매경프리미엄

멀리건 받아 이겨놓곤 동네방네 소문 [라이프&골프]

입력 2022/05/14 06:01
수정 2022/05/14 06:20
[라이프&골프] "내 스코어는 고쳤는데 잘못 표기된 동반자 스코어를 내가 정정하는 기능은 없더라고. 동타였는데 한 타 뒤진 것으로 남게 돼 아쉬워~."

캐디가 잘못 적은 스마트 스코어를 앱에 들어가 직접 수정한 경험을 고교 친구가 들려줬다. 귀가해서까지 본인의 정확한 스코어를 되찾으려는 집념에 놀랐다. 한편으론 잘못된 성적에 대한 그의 아쉬움을 헤아렸다.

앱 기능상 본인 스코어는 고칠 수 있는데 동반자 스코어를 건드릴 수는 없단다. 17번 홀까지 친구가 동반자에게 한 타 뒤졌는데 최종 합계로는 2타 뒤졌다는 사실을 그는 귀가해서 알았다.

문제는 캐디가 마지막 홀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발생한 것. 친구는 파를 잡았는데 보기로, 보기를 범한 동반자 성적은 파로 오기했다.

캐디가 착각해 스코어를 바꿔 적었다. 원래라면 둘이 동타로 끝났다. 앱 상에서 동반자 스코어를 파에서 보기로 수정할 수 없어 결국 친구가 합계에서 한 타 뒤진 것으로 스마트 스코어에 남게 됐다.

동반자나 캐디에게 연락해서 상대 스코어를 정정해 달라고 요청하면 성적에 너무 집착한다는 인상을 줄까 엄두를 못 냈다. 그 정도 선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스코어에 대한 골퍼들의 심리는 복합적이다. 사실 고수와 하수를 불문하고 민감하다. 겉으론 스코어에 연연해 하지 않는 골퍼라도 캐디가 자기 타수를 높여서 잘못 적으면 바로 정정을 요청한다.

몇 홀 지나서 이를 발견해도 소급해서 정확한 기재를 요구한다. 거꾸로 캐디가 한 타를 적게 적으면 눈감고 지나간다.

동반자의 타수를 잘못 적었을 땐 친한 사이라면 보통 캐디에게 수정을 요청한다. 골프가 개인종목이면서 동시에 단체종목이기 때문이다. 접대나 낯선 사람과의 골프 혹은 내기가 걸리지 않은 골프에선 남의 스코어에 대해 대체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첫 홀에서 모두 파를 적는 소위 '일파만파'나 '무파만파' 같은 한국식 스코어 표기에서도 묘한 상황이 생긴다. 첫 홀에 본인은 버디, 동반자들은 보기나 더블보기, 트리플보기를 했는데 모두 파를 적용할 때다.

버디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약속을 해놓지 않았다며 올 파를 고집하는 동반자가 생긴다. 악착 같이 버디를 주장하기도 애매해할 수 없이 버디에서 파로 내려와야 한다. 트리플을 범한 사람에겐 행운, 버디를 잡은 사람에겐 입맛만 다시는 사례다.

마지막 홀에서 모두 파를 적어도 유사한 상황이 생긴다. 물론 내기가 걸렸다면 상상하기 힘들다.

평소 경쟁관계이거나 하수가 첫 홀과 마지막 홀에서 올 파 적용으로 스코어상 우위를 점하면 묘한 기분에 젖는다. 스코어가 눈에 보이면 마음이 불편하다.

여기에다 동반자가 나를 이겼다고 스코어 사진을 찍어 대고 자랑까지 일삼으면 "이게 웬 시추에이션?" 하며 속으로 상처를 입는다.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꺾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면 해명도 못하고 끙끙댄다.

급기야 동창이나 동호회 멤버들에게 알려져 어찌 된 상황이냐며 연락이 오거나 우연한 자리에서 화제가 되면 실로 난감하다.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해명하자니 좀스럽다.

멀리건과 컨시드를 적용했을 때도 찝찝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정확하게 타수를 기재하면 이겼는데 멀리건이나 컨시드를 받은 동반자의 스코어가 나보다 잘 나왔을 때다.

동반자가 평소 나보다 고수라면 이 날은 분명 그를 꺾었는데 스코어론 뒤지니 묘한 감정이다. 상대가 내심 그 점을 알고 있어도 굳이 표현하지 않는다. 인지상정이다.

만약 상대가 "오늘도 역시 나를 이기지 못하는군"이라고 말하면 억울한 마음이 든다. 동반자들이 멀리건과 컨시드에 모두 동의했기에 항의할 수도 없어 혼자 속앓이를 한다.

거꾸로 평소 나보다 뒤지던 동반자가 그 날 멀리건과 컨시드 혜택을 계속 받아 이겨놓곤 우쭐하거나 자랑하면 의아하다. 오죽 좋으면 그렇겠지만 사방으로 소문이 퍼져나가면 당황스럽다.
이럴 땐 스코어상으로 이긴 골퍼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좋을 듯하다. 정확한 스코어를 적용했을 때의 승자를 배려하고 그와 공감하는 자세다.

"늘 챙기는 골퍼도 있지만 대부분 스코어가 마음에 들어야 전화번호를 입력합니다. 그날 스코어에 불만인 동반자들을 의식해서인지 몰래 입력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어요."

경기도 여주CC 캐디의 말이다. 동반자 모두 내기에서 돈도 잃고 성적도 엉망인데 혼자 잘 쳤다고 봐란 듯이 스코어 요청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실전에선 분명 이기고 스코어상으로 졌음에도 흔쾌한 골퍼는 별로 없다. 뒤끝이 없도록 그냥 공정하게 첫 홀부터 마지막 홀까지 제대로 스코어를 기록하면 어떨까.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