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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달러 전 세계 명화가 잠들어 있는 곳…'포트 프랑'을 아시나요? [아트마켓 사용설명서]

입력 2022/06/25 03:01
수정 2022/06/27 10:10
[아트마켓 사용설명서-22]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만 1000여 점. 스위스 제네바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예술 컬렉션'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품 수장고로 꼽히는 제네바 자유무역항의 민간 창고단지 '포트 프랑(Port Francs)'이다.

포트 프랑은 전 세계 자유무역항 시설 가운데 가장 오래됐고, 가장 많은 미술품을 수장하고 있는 곳이다. 19세기 말 건립 당시에는 곡식이나 자동차, 공업용 물품 같은 상품을 보관하는 데 사용됐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제네바를 비롯한 수많은 자유무역항 창고들은 억만장자들을 위한 미술품 수장고로 바뀌었다.

실제로 포트 프랑은 보관품의 40%(약 120만점)가 개인 소장 미술품으로, 총 1000억달러(약 129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보물들부터 피카소와 같은 올드 마스터들이 남긴 박물관급 회화들이 한곳에 잠들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품 수장고로 꼽히는 스위스 제네바 자유무역항의 창고단지 '포트 프랑' 전경. <사진 제공=포트 프랑>


자유무역항은 해당 국가 영토의 한 부분으로서 그 나라의 주권이 행사되는 지역이지만 그 나라의 관세경계선 밖에 있는 지역이다. 자유무역항에서는 외국 화물에 대해 수출 또는 수입 관세가 부과되지 않으며 그 밖의 무역 제한도 적용되지 않는다.

컬렉터들이 미술품 수장고의 위치로 자유무역항을 택하는 이유도 세금 절감 효과 때문이다. 이처럼 최근 미술 시장이 커지면서 자유무역항 지역의 미술품 수장고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술품이 하나의 안정적인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며 마치 금괴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현대 미술품 컬렉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걸작의 소유자들이 작품을 벽에 거는 것보다 가치를 인정받는 것, 또는 비싼 값에 파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포트 프랑에 숨겨진 작품은 소유자는 물론 어느 누구도 감상할 수 없다. 창고에 들어온 지 수십 년이 지난 작품도 상당하다.

일례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Water Serpents Ⅱ'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탈됐다가 상속자들에게 반환됐는데 2012년 다시 러시아의 컬렉터 Dmitry Rybolovlev에게 18억3800만달러에 판매된 뒤 포트 프랑 수장고로 들어가버렸다. 창고에 박힌 이 러시아의 억만장자가 소유한 총 20억달러 가치의 컬렉션에는 피카소의 'Les Noces de Pierrette',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Christ as Salvator Mundi' 등이 포함돼 있다.

포트 프랑의 예술품 수장고. 왼쪽은 회화 작품을 보관 중인 공간이다. 캔버스에 그린 유화 작품은 일정한 온습도 유지가 중요하고 세워서 보관해야 캔버스가 늘어나면서 작품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사진 제공=포트 프랑>


미술계에서는 이 같은 대규모 수장고들이 미술 자체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한다. 미술 작품을 창고에 숨겨놓는다는 것은 예술을 그저 상품으로만 다루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예술이 지닌 공감의 가치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술품의 지분에 투자하고 실제 미술품은 거래소 수장고에 보관돼 어느 누구도 작품을 향유할 수 없게 되는 아트 주식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내 미술 시장의 급성장 역시 코로나19 등으로 금융시장이 휘청이면서 순수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을 구매하는 소비층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미술시장 조사기관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미술품은 평균적으로 약 5% 안팎의 연 수익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오래된 자유무역항 창고시설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예술품을 보관하고 있는 포트 프랑은 19세기 말 건립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사진은 초창기 포트 프랑의 모습. <사진 제공=포트 프랑>


또 자유무역항의 미술품 수장고는 밀매, 탈세, 금융범죄 등 여러 국제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2010년 스위스 세관원들은 남부 터키에서 약탈당한 로마 석관을 제네바 프리포트에서 발견했다. 2013년에는 프리포트 세관 검사에서 시리아 팔미라와 리비아, 예멘 고대 유적지에서 약탈된 유물 9점이 스위스 당국에 압수됐다.

또 포트 프랑 같은 시설은 보안이 철저한 만큼 대부분은 어떤 작품이 있는지조차 외부에서는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알려진 것 외에도 더 많은 범죄 사건이 일어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당국의 여러 노력에도 아직까지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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