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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죽은 후, 내 보호자 되길 회피하는 삼촌…서운함 어떻게 [씨네프레소]

입력 2022/07/30 07:01
수정 2022/08/03 02:09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41]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많은 영화는 용기에 대해 얘기한다. 로맨스 영화에서 주인공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로 용기 낸다. 공포 영화에서 주인공은 악령을 똑바로 마주하기로 마음먹는다. 용기를 낸 결과로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각각 해피 엔딩과 새드 엔딩 영화로 성립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용기 내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영화는 찾기 어렵다. 인물이 무언가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 흥미로운 스토리의 필수 요소인 갈등을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패트릭(오른쪽)의 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의 동생 리(왼쪽)를 패트릭 후견인으로 지목해뒀다. 하지만 자신의 부주의로 자녀 셋을 한 번에 떠나보낸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리는 조카의 후견인이 되는 데 주저하게 된다.<사진 제공=THE 픽쳐스>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는 부친 잃은 조카의 후견인이 되길 요구받은 남자의 고뇌를 그렸다. 조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그는 당연히도 조카를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남자는 후견인 되기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데 그건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부주의로 자녀 셋을 한 번에 잃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과연 그는 또다시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조카를 책임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리의 전처(왼쪽)는 과거 남편을 원망하는 말을 쏟아냈다. 자녀를 잃고 생긴 슬픔을 어떻게든 해소하려다 상처를 주고 말았다. <사진 제공=THE 픽쳐스>


투명인간 취급당하며 건물을 관리하는 남자

영화는 건물 보수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남자 리(케이시 애플렉)의 하루를 비추며 시작된다. 막힌 변기를 뚫고, 물 새는 천장을 수리하는 등 입주민이 어려워하는 시설 유지 관리 업무로 돈을 벌어 근근이 살아간다. 그가 담당하는 아파트가 너무 노후한 탓에 작업이 고되기도 하지만 더 괴로운 건 주민들의 태도다. 그들은 남 듣는 데서 꺼내기 부적절한 이야기를 리 앞에선 거리낌 없이 한다.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주민이 태반이다.

그는 아파트를 보수하는 일로 근근이 살아간다. 더 나은 직장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일부러 하지 않는 듯하다. <사진 제공=THE 픽쳐스>


리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다. 주민이 갑질을 하더라도 해야 할 말은 한다. 밤에는 술집을 찾아 폭음하며 주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기회를 노린다. 그의 눈이 분주하게 쫓는 것은 밤을 함께 보낼 여성이 아닌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줄 남성이다. 상대가 먼저 자신을 때려주길 바라며 말싸움을 유도한다. 그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먼저 주먹을 날려버린다. 그가 자꾸 다대일(多對一) 대결 구도를 만들고 싸움에서 빈번히 지는 것을 봤을 때, 타인을 폭행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리는 누구와도 싸울 것 같은 태세로 살아가지만, 사실 속은 상처 투성이다.<사진 제공=THE 픽쳐스>


"부주의로 자식을 떠나보낸 나, 처벌해주세요"

마치 그는 어떤 강박을 갖고 있는 듯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으며 살아간다. 그건 일종의 고행일지 모른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사랑하는 아내, 어린 세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밝은 가장이었다. 주변엔 그의 유쾌함을 사랑하는 친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흥이 과했던 어느 날, 그는 마약과 술에 취해 벽난로에 장작을 여러 개 넣은 채 맥주를 사러 집을 나섰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불에 활활 타고 있었고 세 자녀는 탈출하는 데 실패했다.

리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경찰의 말을 듣고 외려 실망한다. 부주의로 자식을 떠나보낸 벌을 받길 바랐다. <사진 제공=THE 픽쳐스>


스스로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그는 경찰서에서 자신이 무죄라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한다. 세 자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죗값을 치르기 원했던 그로선 어떠한 법적 처벌도 없다는 점이 외려 천형(天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을 수 있을 텐데도 일부러 허드렛일을 전전하고, 절대 이길 수 없는 패거리에 싸움을 걸며 매일 자신에게 벌을 주듯 살아가게 된 계기다.

그는 스스로의 삶을 안 좋은 조건으로 몰아가며 고행하듯 살아간다.<사진 제공=THE 픽쳐스>


트라우마 치유되지 않았는데, 조카의 보호자 돼도 괜찮을까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사망하며 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평소 몸이 약했던 형이 본인 자녀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리를 지목해뒀던 것이다. 조카와는 삶의 터전이 떨어져 있는 데다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리는 조카 후견인이 되는 것을 꺼린다. 무엇보다도 그에겐 아직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있다. 하지만 조카가 누구보다도 삼촌을 후견인으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냉정하게 외면하기도 힘들다. 술독에 빠져 살다 조카를 떠나버린 친모에게 보내는 선택지도 끌리지 않는다.

패트릭(오른쪽 끝)은 하고 싶은 게 많다. 여자친구도 여럿 사귀고 싶고, 밴드도 하고 싶다. 그건 리가 조카의 후견인이 되기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사진 제공=THE 픽쳐스>


조카의 보호자가 되는 건 그에게 큰 도전이다. 조카의 후견인이 되기로 하면 더 이상 그는 지금처럼 '엉망인 삶'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보호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보다 나은 직장을 알아봐야 할 것이고, 길거리에서도 분노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안전한 상태로 만들지 못한다면, 조카 역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며 자녀에게 속죄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조카의 후견인이 되기 위해서 리는 더 괜찮은 어른이 돼야만 한다. 그는 아직 자기 삶을 개선할 자신이 없다. <사진 제공=THE 픽쳐스>


너는 아직 남을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

리의 결단을 앞두고 영화는 인간의 트라우마가 그렇게 쉽게 극복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느 날 소파에서 잠든 그는 죽은 자식들의 꿈을 꾼다. 세상 천진한 표정으로 그의 옆에 앉은 딸이 리를 흔들어 깨우며 묻는다. "아빠, 우리 불에 타고 있는 거 안 보여?" 꿈에서 만난 딸의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 깨어난 리는 곧 집 안이 연기로 가득한 것을 발견한다. 프라이팬을 불에 올려둔 채 잠에 빠졌는데, 그것이 완전히 타버린 것이다.

리가 자식을 잃은 트라우마에 괴로워한다면, 패트릭은 아버지를 갑자기 떠나보낸 상처에 고통스러워한다. <사진 제공=THE 픽쳐스>


당연히 이 해프닝은 그가 어린 딸을 잃게 된 과거의 사건과 무게감이 다르다. 애들을 방치한 채 외출해서 생긴 화재 사고와 집에서 요리 도중 깜빡 잠든 일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카와 함께 있던 집에서 발생한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또렷한 마음의 소리를 들은 듯하다. 바로 '너는 아직 누군가를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리의 죽은 자식은 자주 꿈에 나타날 것이고, 그가 사소한 실수를 할 때마다 조카를 보호하기엔 아직 부족한 사람임을 깨닫게 할 것이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걷는 모습을 자주 비춘다. <사진 제공=THE 픽쳐스>


리는 조카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다. 두 사람이 모두 신뢰하는 친구의 양아들이 되라는 것이다. 삼촌이 후견인이 될 수는 없느냐며 울먹이는 조카에게 리가 말한다. "못 버티겠어. 미안해." 그는 아버지를 잃고 외로워하는 조카의 후견인이 돼 그를 위로하는 대신, 조카의 앞에서 자기 한계를 고백하기로 용기를 낸 것이다.

때로는 '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는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두루 받았다.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그것은 느린 호흡으로 이 영화가 가닿은 사유의 깊이에 대한 인정일 것이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용기에는 무엇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도 있다는 메시지다.

리는 용기를 낸다. 그건 자신이 조카의 후견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용기다. '하지 않는' 것은 늘 수동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진 제공=THE 픽쳐스>


'하지 않는다'는 게 늘 수동성과 연결되는 건 아니다. 그건 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킬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영화에서 리는 후견인이 되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조카를 낙담시키고 말았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워하는 조카에게 버림받는 기분을 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리는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 당장 조카를 위로하기 위해 후견인이 되는 것보다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건 일순간 조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후견인이 되기로 결정했다가 자신의 트라우마가 조카까지 삼킬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두 사람은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걸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상대방을 위해 좀 더 큰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날도 올 것이다.<사진 제공=THE 픽쳐스>


후견인이 되지 않기로 한 삼촌은 새로 이사 갈 집에 소파베드를 놓겠다고 말한다. 언제든 조카가 놀러오면 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리의 자녀들, 그리고 패트릭의 아빠가 죽기 전처럼 배를 타고 낚시를 한다. 후견인이 되는 큰 책임은 떠안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조카의 옆에서 함께해주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은 계속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면 언젠가 자녀를 잃은 리의 트라우마도, 아버지를 여읜 패트릭의 상처도 예전보다 작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조금 더 큰 그늘이 돼주겠다고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포스터<사진 제공=THE 픽쳐스>


장르: 드라마
감독: 케네스 로너건
출연: 캐시 애플렉, 미셸 윌리엄스, 카일 챈들러, 루커스 헤지스
평점: 왓챠피디아(3.9/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96%) 팝콘지수(78%)
※2022년 7월 29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웨이브, 티빙, 왓챠, U+모바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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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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