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1917“에서 가장 이질적인 소품, '브로디 헬멧'_하

입력 2019.12.31 15:50:00 수정 2020.01.01 14:21:39
  • 공유
  • 글자크기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25] 영화 "1917"에서 가장 이질적인 소품, '브로디 헬멧'_하

1. 20세기 초 '철모'의 표준이 된 아드리안 헬멧

아래 사진은 1915년 프랑스군에 보급되었던 아드리안 헬멧이다. 좌측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고, 우측은 당시 초도 보급된 상태의 헬멧을 재현한 것이다. 
<br><br><아드리안 헬멧 /출처= ⓒwww.ima-usa.com> 
<br><br>이미지 크게보기
아래 사진은 1915년 프랑스군에 보급되었던 아드리안 헬멧이다. 좌측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고, 우측은 당시 초도 보급된 상태의 헬멧을 재현한 것이다.

<아드리안 헬멧 /출처= ⓒwww.ima-usa.com>



프랑스군이 개발한 아드리안 헬멧은 당시 부국강병을 지향하던 거의 모든 나라의 표준 전투 장비가 되었다. 영국군도 처음에는 아드리안 헬멧을 수입하여 썼으나 곧 자체 개발한 모델을 착용했다.

<20세기 초 세계 각국 군대의 아드리안 헬멧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br><br>이미지 크게보기
<20세기 초 세계 각국 군대의 아드리안 헬멧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존 래버리의 1916년 작, “윈스턴 처칠의 초상”. 자세히 보면 아드리안 헬멧을 쓰고 있다. /출처= ⓒgallerix.org> 이미지 크게보기
<존 래버리의 1916년 작, “윈스턴 처칠의 초상”. 자세히 보면 아드리안 헬멧을 쓰고 있다. /출처= ⓒgallerix.org>

2. 아드리안 헬멧보다 업그레이드된 철제 헬멧을 개발하라

영국인 특유의 실용적 관점에서 봤을 때 아드리안 헬멧은 보완할 바가 많았다. 챙은 포탄 파편으로부터 두부를 보호하기엔 작았다. 또 장식이 가미된 디자인은 대량생산에 적합지 않았다.

영국 전쟁부는 철제 헬멧을 자체 개발하기로 하고 적임자를 찾았다. 마침 영국 육군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던 발명가 브로디가 프랑스군 아드리안 헬멧보다 두꺼우면서 동시 대량생산이 가능한 디자인을 제시했다. 영국 전쟁부는 브로디가 제시한 안을 곧바로 선택했다.

<1916년 서부전선의 영국군 모습. 모두들 브로디 헬멧을 쓰고 있다. /출처= ⓒww1.nam.ac.uk> 이미지 크게보기
<1916년 서부전선의 영국군 모습. 모두들 브로디 헬멧을 쓰고 있다. /출처= ⓒww1.nam.ac.uk>

3. 헬멧에 스토리를 담은 브로디의 사업적 수완

브로디가 새 헬멧 디자인을 제시한 것이 1915년 8월, 대량생산된 새 헬멧이 전장에 보급된 것이 같은 해 9월이다. 전시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일의 진척 속도가 너무 빠르다. 영국군 수뇌부의 전폭적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국군 수뇌부가 전폭적 지지를 보냈던 이유는 브로디가 제출했던 제안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브로디는 헬멧의 차별적인 기능성, 생산성 외에도 영국 고유 역사가 담긴 스토리를 제안서에 담았다.

브로디는 새 헬멧 디자인이 중세 잉글랜드군의 '케틀 햇(Kettle hat)'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케틀 햇은 두부를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만큼 두꺼우며 제작 방식이 단순한 철제 헬멧이었다. 또한 제안서 말미에 기존의 압착 기계로 철제 헬멧을 찍어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을 뿐이라며 자세를 낮추었다.

<15세기경에 사용된 케틀 햇 /출처= ⓒcollections.royalarmouries.org> 이미지 크게보기
<15세기경에 사용된 케틀 햇 /출처= ⓒcollections.royalarmouries.org>

브로디는 영국군 수뇌부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거기에 딱 맞는 접근법을 취했던 것이다. 그는 달리 대안이 없어 영국 장병에게 프랑스제 헬멧을 씌워 전쟁터에 내보내는 영국군 수뇌부의 불편한 마음을 꿰뚫어보았다. '중세 잉글랜드군의 장비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는 그냥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한 사업가일 뿐'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전쟁에 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 자부하는 장교들의 체면을 세워주고자 했다.

<브로디 헬멧의 초기형, 공식 명칭은 '>이미지 크게보기
<브로디 헬멧의 초기형, 공식 명칭은 'Steel Helmet, Brodie, War Office pattern'이었다. /출처= ⓒ영국국립박물관홈페이지>

<브로디 헬멧의 개량형, 공식 명칭은 ‘Steel Helmet, MK I Brodie pattern’이었다. /출처= ⓒ영국국립박물관홈페이지> 이미지 크게보기
<브로디 헬멧의 개량형, 공식 명칭은 ‘Steel Helmet, MK I Brodie pattern’이었다. /출처= ⓒ영국국립박물관홈페이지>

4. 영화 '1917' 속의 브로디 헬멧

영화 '1917'의 촬영 후문을 들어보면 제작진은 브로디 헬멧을 어떻게 할 것인지 두고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독일군이 '샐러드 대접'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모양새가 그다지 멋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지해야 할 동작이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었다. 또한 헬멧의 넓은 챙에 가려 인물의 표정 연기가 보이지 않는 것도 난관이었다.

실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이전의 몇몇 영화는 챙 좁은 제2차 세계대전기의 헬멧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그러나 '1917'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쟁 당시와 똑같이 브로디 헬멧을 재현하여 소품으로 썼다.

제작팀의 고증 노력은 영화 전체에서 돋보인다. 특히 아래 스틸컷은 그중 백미다. 상단 사진의 두 인물이 쓰고 있는 것은 브로디 헬멧의 초기형이다. 챙이 넓고 마감은 푸른색 유광 도료로 했다.

하단 사진 진지 속 장병들을 보자. 가만히 보면 초기형과 개량형 헬멧이 섞여 있다. 초기 전투부터 1917년까지 살아남은 자는 보급받았던 초기형을 쓰고 있고, 전사상자를 대신해 전입 온 자는 개량형을 새로 보급받아 전장에 투입되었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개량형은 챙 길이가 줄었고 마감은 카키색 무광 도료로 했다.

<영화 “1917”의 장면들. 등장 인물들이 쓰고 있는 것은 마크 원(MK I) 브로디 헬멧이다. /출처= ⓒIMDb>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1917”의 장면들. 등장 인물들이 쓰고 있는 것은 마크 원(MK I) 브로디 헬멧이다. /출처= ⓒIMDb>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