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82년생 김지영'이어'아몬드'까지...日서 K-문학 왜 뜰까

입력 2020.05.16 06:01:00 수정 2020.05.18 10:24:01
  • 공유
  • 글자크기
[한중일 톺아보기-14]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와 관련된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출처=각사 자료/그래픽=조보라이미지 크게보기
출처=각사 자료/그래픽=조보라지난해 소설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이 현지에서 큰 화제를 낳은 바 있습니다. 에세이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역시 23만부(올해 3월 기준)나 팔리며 일본 내 역대 한국 출판물 판매 최고 기록을 경신했죠. 올해 일본에서 출간된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도 연일 판매 호조세를 보이고 있고, 소설 '아몬드'는 지난달 아시아권 소설 최초 '2020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한국에서 일본 작가와 작품의 인기에 비해, 그간 일본 내 한국 작품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예 서적이 1만부 이상 팔리면 베스트셀러로 분류되고 해외 번역서는 더욱 팔리지 않는 일본 출판시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최근 일본에서 한국 작품에 대한 관심은 분명 이례적입니다. 5년 전 까지만 해도 일본 출판 담당자들은 한국 관련 서적은 혐한 서적이 아니면 도무지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정도 였다고 하는데요. 이 같은 변화에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도 '한국 문학 붐' 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음악이나 드라마와 달리, 일본 내 한류 상품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K문학이 근래 들어 어떻게 인기를 끌게된 것일까요.
K팝 스타들이 애독했다는 입소문

에세이집 이미지 크게보기
에세이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BTS 정국이 읽었다는 소문에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사진=연합뉴스한국 서적들이 일본에서 많이 읽히게 된 데는 먼저 K팝 스타들의 활약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읽고 추천했다는 소문에 일본에선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됐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역시,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가 읽은 책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앞서 '82년생 김지영'은 소녀시대 멤버 수영,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 등 여성뿐 아니라, BTS 멤버 RM 등 남성 아이돌까지 소감을 밝혀 일본 한류팬들 이목을 끈 것이 상업적 성공의 촉매가 됐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에서 한류는 주로 1030대 젊은 세대, 그 중에서도 여성들 사이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데요. '한류의 성지' 신오오쿠보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진 정치적 경색이 무색하게 젊은 일본 여성들로 넘쳐났죠. 때문인지, 일본의 K문학 소비층은 여성, 그 중에서도 젊은 여성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2년 넘게 한국 문학을 일본에 소개해온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는 "K팝, 드라마 등 빠르게 전파되는 형태의 콘텐츠 덕에 형성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이제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3포세대·사토리 세대 등 닮은 사회풍조가 공감 불러


'>이미지 크게보기
'아몬드' 는 일본에서 아시아권 소설 최초 '2020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에 올랐다(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 대한 BTS 관련 선전문구가 거부감이 들었지만, 읽어보니 좋았다는 일본 독자의 리뷰/사진=일본 아마존 캡처

K팝 스타들이 추천했다는 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에 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처음 화제가 되는데 덕을 보는 면이 있겠지만, K-문학을 실제로 읽어본 일본 독자들의 호평을 타고 독자층이 점차 넓어졌다는 시각이 지배적 입니다. 실제로 일본 독자들의 서평에는 "서점에서 무심코 집어들었는데 읽어보니 매우 좋았다"든가 "힘들 때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등 내용 자체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한국문학 번역가 이자 편집자인 오카자키 요코 씨는 "한국 작품들이 일본인들에게 이 만큼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영미권 작품보다 한국과 일본의 감각이 가깝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어 "양국은 고령화, 저출산, 비혼 등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미적 감각, 유머까지 닮은 부분이 꽤 많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에 있어 '가깝고도 먼' 일본이긴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깝고 부대껴온 역사가 긴 만큼 닮은점도 많다는 겁니다.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이미지 크게보기
예를 들면, 작품에 등장하는 결혼 안 하는 남녀에게 왜 결혼 안 하냐고 캐묻는 상황이라든가, 대학 입시를 위해 삼수까지 하는 상황 등은 일본인도 많이 공감하는 것들이라는 거죠. 한국은 수년 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며 자조적 분위기가 만연했는데,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기 '사토리 세대' 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소설 '아몬드'의 인기 비결에 대해서도 창비의 정소영 부장은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고 독특하지만, 인간의 감정과 가족이라는 일본인들도 공감할 만한 주제라는 게 주효했다고 본다"며 "아몬드의 경우, 전개가 빠르고 몰입력이 좋다는 평이 많아 특정 세대 일본인뿐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호평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작가들, 사회·역사성 작품에 잘 녹여내"

맨부커 상을 받은 한강의 이미지 크게보기
맨부커 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일본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계기가 됐으며, 후속작인 '소년이 온다'는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다. 공감대를 자극하는 유사점 이외에, 한국 작품들이 일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도 있습니다. 많은 일본인은 한국 문학에는 일본 문학에서 찾기 힘든 사회성과 역사성이 담겨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리고 이점이 일본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고 말합니다. 1970~1980년대 한국 문학들도 일본에 소개된 적이 있지만, 당시의 시대상이란 무거운 담론을 주로 다뤄 일본 독자들에게 별다른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에 반해, 최근 한국 작가들은 일본 작가들처럼 개인의 일상과 내면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쓰는 듯하면서도, 사회나 역사와 연관이 깊다보니 일본의 '사소설(私小說)'과는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가 청년 빈곤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가벼운 터치로 그린다던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 간접적으로 세월호 사고가 남긴 한국 사회의 상처를 담은 것이 그런 예들이죠.

한국 문학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 씨는 "과거 한국의 근대 소설은 바람직한 사회와 세계상을 제시하는 강한 계몽 의식을 담고 있었는데, 그런 전통이 현재 한국 문학에도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일상을 그리면서도, 거기에 사회 문제를 잘 녹여내고 있는 점이 한국 문학의 매력"이라고 설명 했습니다. 요새 일본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들은 대개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른이 된 세대입니다. 하지만 남북 분단과 군사정권의 억압, 민주화 운동, 급격한 경제 성장과 외환위기 등 한국 사회가 겪은 격동의 역사는 그런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달라진 日출판사들...한국어 번역가도 늘어

일본 출판사 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출판사 '쇼시칸칸보'가 출간한 한국문학시리즈/사진=마이니치신문과거와 달리, 최근 일본 출판사들은 K-문학의 수입에 적극적입니다. 쇼시칸칸보(書誌侃侃房), 쇼분샤(晶文社), 아키쇼보(亞紀書房), 가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 하쿠스이샤(白水社) 등 많은 일본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한국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작들이 자주 출간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에서 일본 독자들 눈에도 잘 띄게 되고 한국 작품들도 많이 읽히게 되는 것이죠. 지난해 수필집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6개 일본 출판사의 경합 끝에 최소 입찰금액의 20배 가격에 판권이 팔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일본에서 한국 저작물 판권은 초판 인세 혹은 최소 금액인 10만엔에 경쟁 입찰 없이 팔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지난해 7월 열린 주일한국문화원 주최 한국어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7월 열린 주일한국문화원 주최 한국어 '번역페스티발'은 300명 정원이 예약으로 가득 찰 정도로 성황리에 열렸다/사진=주일한국문화원일본에서 한국 작품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번역 인력이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최근 몇년새 일본어로 번역 출간된 한국문학 작품이 대폭 늘었으며, 일본내 한국 문학전문 번역가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번역서의 경우 번역 품질이 작품 완성도와 판매량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내 한국어 학습의 저변이 확대되고, 숙련된 번역 인력이 늘어난 것은 일본인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이미지 크게보기
김승복 대표는 "일본에서 4년째 한국어 번역 콩쿠르를 개최하고 있는데, 매년 참가자가 늘어 수백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귀띔하기도 했죠.
K-문학, 일본서 상승세 이어 가려면

지난해 11개 일본 출판사가 참여한 제2회 한국문학페어가 열렸다. 당시 서점에 진열된 한국 작품들/사진=쇼시칸칸보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11개 일본 출판사가 참여한 제2회 한국문학페어가 열렸다. 당시 서점에 진열된 한국 작품들/사진=쇼시칸칸보K-문학이 일본에서 각광 받기 시작한 건 사실이지만, K팝이나 드라마에 비한다면 미풍에 지나지 않습니다. 출판물 이라는 콘텐츠와 산업의 특성상 음악, 드라마처럼 선풍적 인기몰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많습니다.

하지만 폐쇄적이라는 일본 출판시장에서 상승세를 탄 한국 작품들이 보다 가치와 깊이를 인정받아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건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통된 생각일 겁니다. 이를 위해 김승옥 대표는 "한국에는 일본에 소개할 만한 좋은 작품들이 충분히 많다" 며 "국내 출판사들이 일본 출판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 한국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는 장치가 더 다양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 문학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평론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방법" 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는 "미국·유럽시장에 비해 일본시장에 대한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게 사실" 이라며 "국내 출판 관계자들, 에이전트들이 일본시장에도 더 관심을 갖고 통할만한 한국 작품들을 전략적으로 발굴해 소개한다면, 지금의 상승세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