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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바가지 머리와 독일군 언더컷

입력 2020.05.19 15:01:00 수정 2020.05.26 10: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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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44] 헨리 5세, 상고 머리 혹은 바가지 머리(하) 1. 헨리 5세의 바가지 머리는 정통성의 상징

헨리 5세는 어렵게 왕위에 올랐다. 선대로부터 배척당해 주변을 떠돌다가 아버지인 헨리 4세가 병사하고 나서야 권력을 차지했다. 차지한 왕좌 역시 정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대 왕 헨리 4세가 리처드 2세로부터 찬탈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헨리 5세는 정통성을 갈구했다. 왕권을 강화하고 왕실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었다. 정통성을 차지할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신의 대리인으로서 왕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신의 대리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헨리 5세는 대관식에 프랑스로부터 공수해온 성유(聖油)를 쓰기까지 했다.

또한 왕이 된 후에도 묵상, 기도, 고해성사에 충실하고 근면, 성실, 검소를 실천하여 마치 수도사 같은 생활을 했다. 남은 기록을 보면 외모마저 수도사처럼 꾸몄다고 한다. 핵심은 그의 헤어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수도사들은 헌신과 겸손의 상징으로 바가지 머리를 했다.

16세기 오거스틴 수도회(좌), 17세기 도미니칸 수도회(우)의 수도사 모습. 모두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이미지 크게보기
16세기 오거스틴 수도회(좌), 17세기 도미니칸 수도회(우)의 수도사 모습. 모두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둘째는 나중에 '백년전쟁'(1337~1453)으로 불리는 대프랑스 전쟁을 승리로 끝맺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접 원정대를 꾸려 1415년 프랑스로 떠났다.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전장의 헨리 5세는 진두지휘하는 스타일로 군대와 함께 동고동락했다.

당시 참전한 기사, 용병들 상당수는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지 않은 이가 바가지 머리를 하고 전장에 서는 것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지만, 어쨌든 영국 입장에서 프랑스 공격은 또 다른 십자군 원정 아닌가. 헨리 5세의 바가지 머리는 참전자들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1944년, 1989년, 2019년의 “헨리 5세” 영화. 공통점은 바가지 머리이다. /출처= ⓒKMDb이미지 크게보기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1944년, 1989년, 2019년의 “헨리 5세” 영화. 공통점은 바가지 머리이다. /출처= ⓒKMDb 2. 바가지 머리의 재탄생 : 독일군의 두발 기준

나중에 바가지 머리는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 병영에서 재탄생한다. 독일군 수뇌부 일부는 자신이 세계 구원을 위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독일군이 십자군의 재현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군 바가지 머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은 십자군의 머리 스타일을 따라 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군 바가지 머리는 실용의 산물이었다. 전반적으로 짧게 잘라 육박전에서 적에게 잡히지 않게 하되 두부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위쪽 머리카락은 남겨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장시 두발 기준을 제시한 팜플렛의 일부 /출처= ⓒdererstezug.com이미지 크게보기
제2차 세계대전 장시 두발 기준을 제시한 팜플렛의 일부 /출처= ⓒdererstezug.com 독일군 머리 스타일은 바가지 머리보다 앞머리가 조금 더 길다. 오늘날 '언더컷(Undercut)'이라 부르는 그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한때 이를 '상고머리'라고 불렀다. 왜 '상고머리'일까?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 장병들을 찍은 사진. 다들 언더컷을 하고 있다. /출처= ⓒdererstezug.com이미지 크게보기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 장병들을 찍은 사진. 다들 언더컷을 하고 있다. /출처= ⓒdererstezug.com 3. 상고 머리

우리 언론에 '상고머리'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 전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1921년 7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서부리발조합'이 '리발료'를 내렸고 '하이칼나'나 '상고머리'는 삽십오전으로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한편 1930년 4월 6일자 동아일보에는 이런 기사도 있다.
"개화 의류 행풍은 머리에서부터 불기 시작하얏다. 반만년래 변함업시 지켜오든 '상투'를 짧으고 왜머리 총각의 것 부수시하든 머리를 깍가버리게 되자 머리 우에 해괴한 그 류행은 참으로 가관이엇다. 물론 삭발 초긔에 잇서서는 목탁 중 모양으로 발가케 깍거 그대로 현저한 류행이 업섯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십년을 전후 하야서는 일시 머리 우를 평평히 하고 압니마 우의 머리털만을 길게 기른 소위 '상고머리'라는 것이 대류행이엇다. 이 상고머리야말로 (중략) 그 류행에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비위를 상케하얏든 것이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단발령 이후에 '개화'란 명목으로 부는 유행 중에 '상고머리'가 있는데 그 유래나 모양새가 당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비위를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궁금한 것은, '상고머리'라는 표현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까지 가장 그럴싸한 추론은 우리말과 일본어의 합성어로, "윗머리(上: '상')를 5센티미터(ご: '고') 길이로 자른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세간에 한때 '상업 고등학교 학생들이 한껏 멋을 낸 머리라서 상고머리라고 한다'고 알려졌으나 근거 없는 낭설이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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