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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넘어선 네거티브 마케팅의 종말

입력 2020.05.21 06:01:00 수정 2020.05.24 13: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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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21] 상대를 깎아내려 이익을 취하려는 네거티브 전략은 독이 든 사과를 먹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죠. 네거티브 난타전은 민감한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한 번 시작되면 멈추기도 어렵습니다. 갈 데까지 가다 보면 도를 넘어서기 일쑤고 결국 모두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원전 7세기에 살았던 채애후와 식후(息侯)도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두 사람은 동서지간이었습니다. 모두 진(陳)나라 여인에게 장가들었던 것이죠.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채애후의 음흉함과 부적절한 행동이 화근이었습니다. 어느 날 식후의 아내이자 처제인 식규가 친정인 진나라로 가는 도중에 채나라를 들렀습니다. 식규는 당대 최고 미인으로 소문난 여인이었습니다. 채애후는 그녀를 보자 흑심이 발동했습니다. 처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추근거리며 희롱했던 것이죠. 식규는 화가 났고 귀국해 이 사실을 남편에게 털어놓습니다. 식후는 아무리 동서지간이지만 파렴치한 채애후를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채나라보다 힘이 약했기 때문에 보복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고심 끝에 강대국인 초나라를 끌어들이기로 하는데 이 결정이 독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초나라에 이런 내용으로 서신을 보냅니다. "채나라는 중원의 강국인 제나라와 혼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믿고 초나라에 조공을 바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초나라가 식나라를 공격하면 저는 채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채나라 군주는 용기만 있지 처신이 가벼운 자라 의심하지 않고 구원하러 올 겁니다. 이때 우리와 초나라가 힘을 합쳐 그를 사로잡으면 채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채나라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 불을 댕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초나라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채나라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데 혼을 내줄 좋은 기회였으니까요. 식후의 음모는 그대로 실행됐습니다. 채애후는 식나라를 구하러 왔다가 초나라 포로가 되고 맙니다. 초나라 왕은 그를 죽이고 채나라를 취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육권이라는 신하가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바람에 마음을 돌리지요. 채애후를 풀어주기로 한 겁니다.

식후의 배신에 이를 갈던 채애후는 귀국 직전 초나라 왕이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복수의 기회를 잡습니다. 연회 중에 미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초나라 왕에게 은근히 식규를 차지하라고 부추긴 겁니다. "천하의 여인 중에는 식나라 부인인 식규만 한 미인이 없지요. 천상의 선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은 가을 물 같고 얼굴은 복사꽃 같으며 길고 짧음이 조화롭고 행동거지는 생기가 있으니 저는 그런 여인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군후의 위엄이라면 제나라나 송나라 여인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텐데 하물며 초나라 밑에 붙어 있는 식나라 부인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에 초나라 왕은 식나라를 방문해 식규를 직접 눈으로 보고 반합니다. 그리고 식규를 차지하려는 흑심에 식후를 겁박해 작은 마을로 내쫓습니다. 식후는 채애후에 대한 도를 넘어선 보복이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네거티브 공략은 채나라와 식나라의 공멸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초나라만 어부지리를 얻은 셈이지요.

경쟁자에게 치명타를 주려고 했던 네거티브 마케팅으로 공멸한 사례로는 1990년 중반 화제가 됐던 중금속 녹즙기 사건이 있습니다. 한 업체가 타사 제품에 비해 중금속이 덜 나온다는 광고를 내보낸 게 발단이 됐습니다. 경쟁 업체는 허위 광고라며 경쟁당국에 제소했고 논쟁은 일파만파로 커집니다. 급기야 소비자단체와 정부가 네거티브 마케팅을 펼치는 업체 제품을 포함해 시중에 판매되는 녹즙기의 중금속 검출 조사에 나섰습니다. 결과는 무해하다고 나왔지만 이미 녹즙기 전체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녹즙기 전체 시장이 얼어붙어 네거티브 광고로 공격을 시작했던 업체나 반격에 나섰던 기업이 모두 어려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나친 네거티브 마케팅이 초래한 불행이었지요.

존 스컬리 /사진=wikimedia이미지 크게보기
존 스컬리 /사진=wikimedia 물론 성공한 네거티브 마케팅도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발탁한 존 스컬리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1983년 애플 최고경영자로 영입되기 전에 10년 이상 펩시콜라를 경영했습니다. 이때 선두 업체인 코카콜라에 대한 네거티브 마케팅으로 콜라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서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1970년대 펩시와 코카콜라의 네거티브 광고전은 유명합니다. 펩시콜라의 네거티브 마케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절제'에 있었습니다. 경쟁사 제품을 공격하되 도를 넘어서지는 않았고, 소비자들이 영화를 보듯이 두 업체의 네거티브 광고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이는 전체 시장을 키우는 쪽으로 작용했습니다.

경쟁은 어쩔 수 없이 네거티브를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네거티브 마케팅의 공멸과 흥행은 바로 여기에서 갈리니까요. 똑같은 네거티브 전략이라도 채애후와 식후의 사생결단이나 녹즙기 업체들의 이전투구가 마케팅의 달인 존 스컬리가 펼친 광고전과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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