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사관 폐쇄'로 불붙는 中스파이 논란...한국은 남 일일까

입력 2020.08.01 06:01:00 수정 2020.08.02 10:57:25
  • 공유
  • 글자크기
[한중일 톺아보기-22]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미국 당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 영사관이 지적재산권을 탈취하는 스파이 활동의 온상(a hub of spying)이라고 주장했다/사진=유튜브 캡처이미지 크게보기
미국 당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 영사관이 지적재산권을 탈취하는 스파이 활동의 온상(a hub of spying)이라고 주장했다/사진=유튜브 캡처미국이 지난달 24일 텍사스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 대한 폐쇄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 같은 강경 조치의 이유로 미국은 해당 총영사관이 산업 기밀을 빼내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등 불법행위를 한 점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휴스턴 총영사관은 스파이 활동의 온상"이라며 "이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희생된다"고 주장했죠. 휴스턴은 미국에서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버금가는 과학기술 정보 집결지입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스파이 활동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휴스턴 총영사관의 경우는 특히 최악"으로, 도를 넘어선 행위가 폐쇄 결정의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중국이 연루된 대미 산업스파이 행위는 최근 10년 새 14배나 증가했고, 현재 조사 중인 5000여 건의 방첩 사건 가운데 절반이 중국 관련으로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상태입니다. 특히 미국 당국은 중국이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최초로 내놓으려는 야망에 젖어 관련 정보를 탈취하려 했음을 시사했습니다. 휴스턴에는 세계 최대의 의학 클러스터 중 하나인 '텍사스메디컬센터(TMC)'와 '텍사스 아동병원 백신개발센터' 등이 있는데요. 과거 사스 백신 개발에도 참여했던 이 센터가 현재 코로나 백신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중국 정부는 전면 반박하며 사흘 뒤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맞불 조치를 놓아 양국 간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죠.
줄지 않는 국내 산업기밀 유출…60% 이상 중국發
국정원과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8년간 국내 산업기술 및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건 전체의 60% 이상이 중국발 이었다/그래픽=조보라 게티이미지뱅크이미지 크게보기
국정원과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8년간 국내 산업기술 및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건 전체의 60% 이상이 중국발 이었다/그래픽=조보라 게티이미지뱅크 영사관 폐쇄에 앞선 지난달 21일 미국 법무부는 중국인 해커 2명이 중국의 정보기관 국가안전부(MSS)와 연계해 코로나19 백신 정보를 탈취했다며 기소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범행 대상에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 기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에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적·물적 교류가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자국 산업 성장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 정부가 이 같은 매력적 요소를 갖춘 이웃국을 대상으로 활발한 공작활동을 피지 않고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 모릅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자료를 종합하면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및 시도 적발건수는 총 181건, 국가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및 시도 적발건수는 총 35건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 60% 이상이 중국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죠.

국가 핵심기술이란 산업기술 중 기술,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안보 및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중국의 기술·인재 탈취 시도는 △산업스파이 개입·사이버 공격을 통한 해킹 △기업 M&A △협력사 위장취업 △외국인 연구원 접촉 △해외 전시회 활용 등 경로와 수법이 다양·교묘해지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국가 핵심기술이란 산업기술 중 기술,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안보 및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중국의 기술·인재 탈취 시도는 △산업스파이 개입·사이버 공격을 통한 해킹 △기업 M&A △협력사 위장취업 △외국인 연구원 접촉 △해외 전시회 활용 등 경로와 수법이 다양·교묘해지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산업, 군사 기밀 등 각종 정보를 탈취하는 것은 일본이나 미국 등에 의해서도 발생하고 있지만, 중국이 수십 년간 계속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특허청 산하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은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이 가진 원천기술보다도 한국의 기술을 더 선호 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기술은 탈취 후 바로 상용화가 가능한 데 반해, 이들 국가의 원천기술은 중국이 응용하기에 아직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편법을 동원해 기술과 지식을 갖춘 인재를 대놓고 빼가는 경우가 늘면서 매년 1000명 이상의 반도체 인력이 중국행을 택하는 것으로 알려졌죠.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 이유라는 산업스파이 거점 의혹은 미·중 양자 간 문제지만, 한국도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하거나 가볍게 넘길 만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민족성 노린 순혈주의 전략…"포섭 대상 98% 중국계"
중국에 포섭된 전 CIA 간부 진우다이(Larry Chin·좌)와 그의 부인의 모습. 1985년 발각되기 전까지 40여년간 중국을 위해 일했다. 6·25전쟁 중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포섭된 것으로 알려진 그는 투옥중 자살했다이미지 크게보기
중국에 포섭된 전 CIA 간부 진우다이(Larry Chin·좌)와 그의 부인의 모습. 1985년 발각되기 전까지 40여년간 중국을 위해 일했다. 6·25전쟁 중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포섭된 것으로 알려진 그는 투옥중 자살했다 미국 정보보안감독국(ISOO) 자료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중국 MSS가 시도하는 포섭 대상의 98%가량은 중국계 미국인 등 민족적 중국인입니다. 같은 사회주의권인 러시아의 경우 러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비율이 25% 이하라는 점에서 대조적이죠. 교포나 교민들을 주요 포섭 대상으로 삼는 건 중국 정부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유독 중국계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특성을 보입니다. 이것은 효율성과 문화적 특징, 민족주의 등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전직 FBI 중국 전문 분석관 폴 무어는 중국이 산업 기밀 입수를 위해 다른 민족적 배경의 사람들보다 중국계에 훨씬 효율적인 접근이 가능한 이유로 인구적 특징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중국계 미국인이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연구와 개발 분야 종사자로 한정했을 땐 15% 이상을 차지합니다. 또한 많은 인구와 강한 적응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어디든 화교들이 뿌리를 안 내린 곳이 없는 만큼, 중국 정보기관들이 중국계를 목표로 하는 건 충분히 효율적인 선택인 거죠.

포섭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또는 중국에 있는 친지들에 대한 의무감에 주로 호소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계가 주로 표적이 되다보니 미국에서는 중국계에 대한 편향 수사 논란도 자주 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CIA 간부 진우다이, 물리학자 피터 리, 해군 장교 에드워드 린 등 굵직한 사례부터 가장 최근 싱가포르 국립대 대학원생 딕슨 여에 이르기까지, 중국계가 주로 연루돼 왔음을 부정 할 순 없습니다.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 우한이공대에 연구소 등을 설립하는 조건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것을 숨기다 체포됐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크게보기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 우한이공대에 연구소 등을 설립하는 조건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것을 숨기다 체포됐다/사진=연합뉴스 최근에는 이 같은 전통적 패턴을 넘어서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글렌 더피 슈라이버 사건입니다. 상하이에 거주하던 백인 대학생 슈라이버는 중국 여성에게 포섭돼 CIA에 위장 취업하려다 2014년 적발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올해 1월에는 최고의 나노 과학자로 명성이 높던 찰스 리버 하버드대 화학·생물화학과 교수가 매수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죠. 리버 교수는 중국과 연계돼 체포된 석학급 과학자 중 중국계가 아닌 첫 사례여서 특히 논란이 일었습니다. 중국이 비중국계로 매수 대상을 넓히는 것은 중국계가 포섭 대상으로 선호된다는 미국의 추정과 경계에 대응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기술 탈취도 '인해전술'...백인계획서 만인계획으로
천인계획은 중국이 전세계 과학기술 분야 최고 인재들의 영입을 위해 2008년 부터 본격 추진해온 프로젝트다/사진=류신망이미지 크게보기
천인계획은 중국이 전세계 과학기술 분야 최고 인재들의 영입을 위해 2008년 부터 본격 추진해온 프로젝트다/사진=류신망 기술 탈취에 있어 중국식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인해전술'을 들 수 있습니다. 폴 무어는 이를 '1000개의 모래알'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해변의 모래가 첩보 대상이라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위성과 각종 첨단 기술로 모래를 분석해 정보를 얻고, 러시아는 야밤에 특공대를 보내 모래를 퍼오게 한다면, 중국은 1만명의 사람을 보내 그들이 묻혀온 모래를 모은다. 결국 중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은 모래를 얻게 된다." 전 미국 육군대학 전략연구소장 래리 워츨은 이 전략에 대해 "중국은 제한된 임무를 부여한 수많은 사람을 보내 상대 국가를 인파의 홍수에 담가버린다"고 설명하기도 했죠.

지난 달 초 카이스트의 모교수가 거액에 자율주행 기술을 중국에 넘긴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다/사진=매경DB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달 초 카이스트의 모교수가 거액에 자율주행 기술을 중국에 넘긴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다/사진=매경DB 이 같은 인해전술은 핵심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한 고급인력 영입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천인계획(千人計劃)'입니다. 천인계획은 2008년부터 중국 정부가 국적 불문하고 과학기술 분야 최고 인재를 대량 영입하기 위해 추진해온 프로젝트입니다. 1990년대 매년 해외 최우수 인재 100명을 유치하겠다는 슬로건과 함께 시작된 '백인계획(百人計劃)'의 후속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죠. 높은 연봉과 연구 펀딩 등 파격적 대우와 다양한 혜택을 제시해 인재를 확보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비윤리적 행태가 지적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도 천인계획에 연루된 경우입니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중국에 자율주행 기술을 넘긴 혐의로 조사 중인 카이스트 교수가 여기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죠.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천인계획은 중국이 운영하는 200여 개 인재유치 프로그램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중국 당국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인재유치에 성공하자 4년 만에 천인계획을 '만인계획(萬人計劃)'으로 확대했습니다. 2022년까지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첨단 기술 분야 인력 1만명을 키워 이 중 1000명은 노벨상 수상자급 인재로 만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있죠. 미국은 중국이 지식재산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불 없이 인재를 빼내 비용과 시행착오를 줄이고 단기간에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진화하는 中의 기술 탈취…효과적 대응 마련 시급
서울 명동에 있는 주한 중국 대사관의 모습/사진=매경DB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명동에 있는 주한 중국 대사관의 모습/사진=매경DB 면책특권이 있는 재외공관이 상대국의 각종 고급 정보 수집의 전초기지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특히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독재국의 공관이나 주재원들은 거의 스파이 활동과 연관돼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죠. 미국 영국 등 서방 선진국과 한국도 별로 다르지 않은 시스템이라고 하지만 정권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 민주주의로 인한 개방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수십년간 중국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미국은 물론 한국 등 전세계에서 기술을 탈취해 왔습니다. 휴스턴 공관 폐쇄 조치가 대선 직전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있지만 중국의 전방위적 기술 탈취 시도가 빌미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은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자국 기업의 영업비밀을 법률로 철저히 보호하면서도, 외국기업 의 영업비밀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여 오기도 했죠.

첨단 산업기술과 전문인력 유출은 두말할 나위 없이 경제에 치명적입니다. 불법과 편법을 넘나든 인재 빼가기에서 기업 인수합병(M&A), 해킹 등 사이버 공격까지 중국의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나름 대응 하고 있고 기업들도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지만 기술·제도적으로 다양하고 교묘해지는 탈취 시도를 방어하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특히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비용 등의 이유로 기밀 유출 방지를 위한 대응 체계가 매우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3년(2017~2019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 72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은 3건(4%)에 불과하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크게보기
최근 3년(2017~2019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 72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은 3건(4%)에 불과하다/사진=연합뉴스 현재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이를 침해할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3년(2017~2019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 총 72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은 단 3건(4%)에 불과합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산업스파이에 최고 징역 20년에 5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해 상당한 효과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직 자체가 불법은 아닌 만큼 인권침해 소지와 범죄 입증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보다 확실한 제도적 지원과 기술 유출에 대한 더 엄격한 법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