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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베트남 파견 공무원의 죽음

입력 2020.09.14 15:01:00 수정 2020.09.18 10: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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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06] 오늘은 무거운 마음으로 짧게 글을 씁니다. 일요일 출근길에 친한 지인에게 받은 문자는 충격이었습니다. 40대 초반인 젊은 공무원이 별세했다는 소식었습니다. 사인은 자살이라 하더군요.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베트남 문화 관련 단체 기관장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한두 차례 얼굴을 마주한 인연이 전부인 그는 제게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베트남에서 적잖은 마음 고생을 한 인물입니다. 발단은 횡령과 관련한 이슈였습니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기사를 찾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충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속 직원들과 워크숍을 가장한 관광을 가기 위해 설치하지 않은 집기를 설치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베트남 기자들을 초청하기 위해 촌지를 돌렸다는 의혹으로 또 한 번 언론의 포화를 맞았습니다.

그를 둘러싼 직원 간 문자메시지 내용까지 공개된 기사만 보면 그를 둘러싼 의혹이 사실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이 문제가 불거지며 현지 집중 감사를 당했고, 별 문제가 없다는 감사 결과를 받았지만 이것이 부실 감사였다는 의혹에 또 한 번 휘말리며 결국 본국으로 소환되어 추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에는 그가 맡고 있는 보직이 함께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고강도 조사 끝에 그는 그를 둘러싼 의혹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보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무원이 횡령 의혹이 사실로 판정되고 곧바로 다시 보직을 받는 사례는 없습니다. 그가 정식으로 보직을 받고 출퇴근했다는 것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결국 큰 문제는 없었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새로 보직을 받고 채 보름이 되지 않아 빠르게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별세 소식에 찍힌 '중앙부처 ○○과장'이라는 글자 몇 자. 그리고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자식입니다. 그는 몇 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그가 이번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 아이는 졸지에 고아가 된 셈입니다. 아마도 그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우울감과 싸우며 끝내 버티다, 보직을 돌려받음과 동시에 모든 것을 한번에 내려놓을 만큼 마음이 무너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아직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지 않은 베트남 관행입니다. 현지에서 종종 만났던 한 한국 기업 주재원은 친한 베트남 공무원 사무실에 갔다가 깜짝 놀랐던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차를 한잔 하고 있는데 공무원 비서가 50만동(약 2만5000원) 지폐가 무더기로 쌓인 지폐 다발을 공무원에게 가져다 주더라는 겁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들이 보낸 '인사성 뇌물'의 하나였습니다. 그 공무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폐 뭉텅이를 서랍에 넣으면서 추후 정기적으로 직원 직급 등을 고려해 성과급 형태로 나눠서 돈을 가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한국 기업 주재원이 그 공무원과 마음을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보여준 베트남의 속살 중 하나입니다.

아직 베트남이란 나라는 '코리안 스탠더드'로 보기엔 이해가 가지 않은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국가입니다. 20년, 30년 전 한국 투명성이 지금과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베트남도 경제가 더 성장하고 사회가 더 성숙하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모습 중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버리면서 발전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베트남을 한국 모습에 끼워넣는 식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은 물론 라오스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에서 근무하는 많은 한국계 기업 주재원, 기관장들은 비슷한 고민을 토로합니다. 한국식 회계로는 처리하기 힘든 일회성 자금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걸 만들기가 녹록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런 고민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흑과 백의 영역이 자른 두부처럼 매끈하게 갈리는 곳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많은 회색지대가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은 결국 판단의 영역이고 그 판단의 영역은 상황별·국가별로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고인의 비리를 생전 폭로했던 기사를 비난하거나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 공무원을 애써 옹호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밝혀진 진실은 그 공무원에게 비리 관련 의혹이 있었고 그래서 오랜 조사를 거쳤지만 결국 보직을 돌려받았고 끝내 얼마 전 생을 마감했다는 허무한 문장 한 줄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비슷한 일은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는 누군가에게 여전히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럴 때 언론은 어떤 기준을 기반으로 누군가를 매섭게 때려야 하는 것인지, 또 공무원 비리를 심사해야 하는 기관은 뭘 기준으로 비리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 해결되지 않은 고민뿐입니다.

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 우울과 한숨과 고통으로 살았을 그 공무원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졸지에 아빠도 엄마도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그 아이가 아무쪼록 씩씩하게 자라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바랄 뿐입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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