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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한국판 뉴딜의 진짜 얼굴

입력 2020.09.15 06:01:00 수정 2020.09.23 18: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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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대공황시 정부차원에서 실질적인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개인 사업가들의 기금으로 구제방안을 마련했다. 뉴딜정책/사진=네이버 백과사전이미지 크게보기
1929년 대공황시 정부차원에서 실질적인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개인 사업가들의 기금으로 구제방안을 마련했다. 뉴딜정책/사진=네이버 백과사전 [김세형 칼럼]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FDR)가 뉴딜정책을 창안한 지 87년 만에 한국 땅에 상륙했다.

차제에 루스벨트가 뉴딜을 통해 무엇을 추구했는지, 그것이 오늘 한국과 어울리는지 한번 스크린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루스벨트가 취임한 때(1933년 3월 4일)는 공장은 올스톱하고 사람들은 은행을 믿지 못해 돈을 넣지 않으니 경제가 마비된 대공황의 암흑이었다.

25%에 달하는 실업률이 청년들은 절망으로 떨어지고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었다. '잊힌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새 정책이 뉴딜(new deal)이다.

농업조정법(AAA)은 생산량을 줄여 농산물 값을 올려 농민을 살리고, 국가산업재건법(NIRA)은 생산량과 노동시간을 줄여 공산품 가격을 유지하면서 최저임금을 올리게 하고, 와그너법(Wagner Act)은 노조결성법과 파업권을 부여하면서 심지어 노조에 가입을 조건으로 신규 채용을 허용하는 데까지 갔다.

사회보장법을 처음 도입해 노약자 실업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체계를 갖췄다.

뱅크런을 막기 위한 예금보험공사법을 제외하면 모조리 약자를 위한 제도 개혁이었고 일자리 마련용 테네시 개발계획은 끄트머리 한 꼭지로 들어가 있었을 뿐이다.

이런 기초지식을 알고 있는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한국판 뉴딜'을 보면 세 가지 사항에서 놀라움과 의문을 금치 못할 것이다.

첫째는 뉴딜의 본령인 시스템 개혁이 아닌 IT뉴딜, 그린뉴딜 등 산업 개발에 한국판 뉴딜이란 명칭을 갖다 붙인 부적절함이다.

둘째, 루스벨트의 뉴딜은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평가가 나 있는데 한때 경제 우등생이었던 한국이 거의 한 세기 만에 답습하려 한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셋째는 한국판 뉴딜이 서울 부산시 보궐선거, 그리고 차기 대선 등 정치 일정과 함수관계에 대한 의구심이다.

임기 1년 반 정도 남은 문재인정부는 170조원의 뉴딜펀드를 조성하돼 1차로 20조원의 정책펀드로 IT,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할 요량이다.

FDR의 뉴딜로 치면 테네시강 개발사업인 셈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더민주당이 총선에서 180석을 얻어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새로운 법안들이 FDR의 뉴딜을 의미하는 한국판 뉴딜의 가면을 벗은 본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익공유제, 재벌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금융통합법, 그리고 대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상법상 감사 선임, 다중 및 대표소송제 같은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대법원이 납득하기 어려운 법리로 전교조를 합법으로 인정하더니 해직 근로자, 시민단체 출신을 노조원으로 인정하고 노조전임자를 대폭 지원하는 노동3법 개정안을 더민주는 밀어붙일 예정이다.

투자수익률 3%를 보장한다는 그린뉴딜이니, IT뉴딜이니 하는 것은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연간 수익률 5%를 보장하는 리츠(REITs)를 동학개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판국에 수년간 3%에 원금이 묶이는 펀드를 누가 사려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이미지 크게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청와대의 뉴딜 행사는 루스벨트의 뉴딜에 비하면 옳은 명칭이 아니다. FDR의 뉴딜 법안은 국가가 기업의 고용, 생산량, 가격까지 통제한다 하여 대부분 위헌 판결을 받았다. 1939년 헨리 모겐소 장관은 1939년 뉴딜 플랜으로 경제성장도 고용도 실패했다며 '루스벨트 불황'이란 명칭을 남기고 떠나갔다.

1차 뉴딜 정책에서 대패한 루스벨트가 기사회생한 것은 2차 대전이 터져 노조에 파업금지법을 적용하고 국가간섭법안을 모조리 폐기한 때문이었다.

루스벨트는 주류 교체와 큰 국가를 꿈꿨다. 그의 뉴딜 정책은 약자를 보살피고 경제도 회복시키자는 것이었으나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지금 국회가 통과시키려 하는 법들이 한국 경제를 회복시키고 선진국에의 꿈을 이루게 해줄 것인가.

루스벨트가 나중에 틀렸다며 수정해버린 그 이데올로기를 거의 한 세기 만에 답습하려는 헌 꿈이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시대로 일할 여건이 변한 한국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동 개혁이라고 한다.

펀드를 조성해 국민에게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주고 펑크날 경우 정부 자금(세금)으로 보전하겠다는 발상은 참 한가해 보이기까지 하다.

코로나19로 경제성장률은 올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기업 경영은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으로 참담한 상황이다. 경제 체질은 크게 약해져 전 세계가 일자리만 보호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각오다. 유독 한국민이 부자 증세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상법 공정법 노동법 등 3법 개정으로 기업의 손발을 더 묶으려 한다.

정부가 지금 할 일은 IT, 바이오, 게임 같은 잘되는 사업 분야에서 기업과 경합할 필요가 없고 노동 개혁, 규제 철폐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고용의 유연성 등 노동 개혁에 대한 바람은 정말이지 간절하다.

미국 역사에서 루스벨트는 치적 3위권 대통령으로 꼽힐 정도로 승자다.

그 비결은 자신이 틀렸으면 바로 고치는 데 있었다고 그린스펀은 자신의 저서 미국자본주의에서 평했다.

문 대통령이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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