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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는 옛말?! 싱겁게 끝난 LG화학 분할 주총

입력 2020.10.30 17:27:00 수정 2020.11.04 1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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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추기자] 일일 연속극이나 한국 영화를 보다 보면 수십 년째 그대로인 레퍼토리가 있다. 바로 재벌가의 재산분쟁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주주총회 장면이다. 지분율 0.1%를 더 얻기 위해 복수와 배반이 거듭되고, 결정을 확정 짓는 의사봉을 내려치기 직전 빠른 비트의 음악이 깔림과 동시에 "잠깐"이란 외마디를 외치며 등장하는 주인공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완전히 뒤집는 반전을 선사한다.

LG화학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동 LG트윈타워 동관 입구 /사진=추동훈 기자이미지 크게보기
LG화학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동 LG트윈타워 동관 입구 /사진=추동훈 기자 10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LG트윈타워 동관 대강당. 이날 LG화학의 전지(배터리) 사업부문을 떼내는 물적분할 안을 확정하는 주총 개최가 예정된 이곳은 아침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난 9월 17일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문에 대한 분사 발표로 주식시장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지 한 달여 만에 결론을 내리는 결전의 날인만큼 투자자들과 미디어의 눈길이 쏠렸다.

특히 주총을 불과 사흘 앞둔 27일, LG화학 2대 주주로 10.2%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제16차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개최하고 분할계획서 승인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며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분할계획의 취지 및 목적에는 공감하나, 지분 가치 희석 가능성 등 국민연금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돼 반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2대 주주의 반대 선언으로 드라마 속 장면이 재연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지만 여전히 분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로 그날의 아침이 밝았다.

LG화학 주주총회 현장에 가이드라인이 설치된 모습 /사진=추동훈 기자이미지 크게보기
LG화학 주주총회 현장에 가이드라인이 설치된 모습 /사진=추동훈 기자 삼엄한 경비와 총회를 앞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과 달리 현장 분위기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을 마련한 데다 이미 총회 전인 20~29일에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미리 행사했기 때문에 썰렁함이 더해졌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온택트 및 전자투표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더 이상 드라마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주총이 열리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주총 현장은 약 400석이 마련된 강당이었다. 거리 두기 조치로 100여 명을 수용할 계획이었던 이날 주총에는 80명 정도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관계자는 "많은 주주들이 전자투표에 참여해 현장을 찾은 주주들이 비교적 적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총 시작을 전후해 주주들 발길이 이어졌지만 인파로 인해 입장이 지연되거나 혼잡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연세가 많아 휠체어를 준비해 입장한 노인과 책가방을 메고 등장한 30대 직장인까지 가지각색의 주주들이 주총장으로 입장했다. 주주들은 주총장 입장에 앞서 발열 체크를 하고 주주 명단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LG화학은 이날 주주들이 대거 현장에 올 것을 예상해 대강당 앞에 입장 대기 가이드라인을 설치하고 임시 여유 공간을 확보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한 직장인 주주는 "물적분할이 결국 개인투자자들에게 부메랑이 돼 피해를 입힐 것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며 "분사를 안 하고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판단한 것이란 생각에 직접 주총장에 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70대 주주는 "십수 년간 LG화학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해왔는데 배터리 부문 분사 결정으로 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주주총회 직후 한 개인주주가 진행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추동훈 기자이미지 크게보기
주주총회 직후 한 개인주주가 진행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추동훈 기자 이날 주총에 참석한 의결권 있는 주주 수는 20~29일 실시된 전자투표를 포함해 1만3347명으로 집계됐다. 대다수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했고 일부 소수 주주들만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배터리 사업 부문 분사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던 만큼 주총장 현장에서 피켓 시위를 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반대 시위자들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현장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다수의 실력 행사가 이뤄지지 않아 시작 전에 풍겼던 긴장감조차 금방 달아났다.

전후좌우로 거리 두기를 시행한 주총장 내부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놓고 사회자와 일부 주주 간 실랑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감사보고, 분할계획서 승인 의결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국민연금의 반대 변수로 의외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일부 우려와 달리 이날 결과는 싱겁게 끝났다. 총 참석 주식 수 5970만9287주(77.5%)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주식 수는 4910만9574주로 찬성률 82.3%로 배터리 사업부문 분할이 확정됐다. 약 70분 만에 행사가 종료됐다.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대부분 외국인 및 기관투자가들이 찬성에 베팅하며 무난한 결과가 나왔다. LG화학의 지분율은 (주)LG 등 특수관계인 34.17%, 국민연금 10.20%, 기타(외국인과 국내 기관·개인 주주) 54.33% 순이다. 기타 지분 중 외국인 투자자가 약 40%, 국내 기관과 개인이 약 12%를 차지한다.

LG화학 주주총회가 끝난 후 텅빈 주주총회장 /사진=추동훈 기자이미지 크게보기
LG화학 주주총회가 끝난 후 텅빈 주주총회장 /사진=추동훈 기자 특별 결의 사항으로 분류되는 회사 분할 건은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총 발생 주식 수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전자투표를 통해 해당 조건이 충족되는 바람에 별도 현장 투표 역시 진행되지 않았다. 또한 주주들을 위한 연이은 당근책을 발표했던 LG화학이 이날 특별히 새로운 발표나 주주들을 위한 제안들을 하지 않으면서 기존 분할계획서 승인 건만 예정대로 결의됐다.

물론 아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총에 참석한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일부 주주들이 날을 세운 질문을 하거나 지적을 하며 논박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중 일부 주주가 언성을 높이고 신 부회장을 직접 지목하며 문제를 제기하면서 추가 질의시간이 다소 지연됐다. 하지만 과거 일부 주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이어가며 진행 자체를 못하게 막아내는 육탄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의총이 끝난 직후에도 일부 주주들은 작정한 듯 사업 분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자리를 떠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욕설이 오가거나 몸싸움을 하는 등 불상사 없이 행사는 차분히 마무리됐다.

LG화학이 지난달 결정한 물적분할 안과 관련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주주와 소통 없이 회사의 미래 전략으로 결정된 안을 놓고 소액 주주들의 강한 불만이 쏟아졌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며 논란이 커졌다. 이를 달래고자 LG화학은 사상 처음으로 잠정실적을 공시하고 분할 후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 지분율을 70% 이상으로 유지하는 안을 내놓았다. 배당정책, 존속회사 및 신설회사 육성 방안까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던졌다는 평가다. 이번 주총에서 또 다른 당근책이 나올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지만 결국 추가 유인책은 없었다. 이로 인해 이날 기대감을 안고 주총장을 찾은 주주들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LG화학 임시주주총회 의안설명서 /사진=추동훈 기자이미지 크게보기
LG화학 임시주주총회 의안설명서 /사진=추동훈 기자 주총 후 기자들 앞에 선 한 주주는 "사업 분할 결정 후 금일 총회까지 회사의 대응에 너무 실망했다"며 "현장에서 반대표를 행사하려 했으나 찬반투표 자체도 진행하지 못해 주주 의견을 반영조차 못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날 임시 주총에서 분할 계획 안건이 통과됨에 따라 오는 12월 'LG에너지솔루션'(가칭)이 공식 출범한다. 분할등기일은 12월 3일로 정해졌다. 분할 회사는 LG화학의 100% 자회사로 자본금 1000억원이다. 물적분할할 회사의 작년 매출은 6조7000억원 규모다. 분사 이후 회사는 급성장 중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분사를 통해 배터리 분야 글로벌 1위 경쟁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타 부문의 재무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공개(IPO) 역시 순차적으로 준비해나갈 방침이다.

이날 분사 결정에도 불구하고 LG화학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개인이 595억원을 매수하했지만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49억원, 411억원 순매도해 4만포인트(6.14%) 빠진 61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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