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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계획이 해마다 실패하는 이유

입력 2021.01.06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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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46]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스토리가 사랑받는 이유는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대립할 때는 대체로 과거의 '나'가 이긴다는 것이다. 2012년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루퍼'라는 영화에서 과거의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미래의 자신을 심지어 죽이려는 시도까지 한다. 또 김윤석과 변요한이 주연했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라는 국내 영화에서도 과거 주인공 변요한과 미래의 주인공인 김윤석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늙은 주인공은 젊은 주인공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영화 속 미래 주인공들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할 때 눈빛은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보다도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고, 과거의 '내'가 가장 잘되기를 응원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속 줄거리처럼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데 반해 과거의 나는 미래의 자신을 그렇게까지는 아끼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미래 주인공의 짝사랑은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실생활에서도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소홀히 대하거나 학대하는 일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2017년 행동경제학에 관한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의 리처드 세일러(Richard H.Thaler) 교수는 계획자-행동자(planner-doer model) 모형으로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때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생애 전반의 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계획자(planner)의 자아와 현재 효용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행동자(doer)의 자아가 대립하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안했다. 그는 계획자로서의 자아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 주제들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현실을 살고 있는 일반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의 효용을 더 중요시하는 행동자(doer)로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을 보내고 2021년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지인들이 모여 새해 이루고 싶은 계획을 나누거나, 해돋이를 보면서 소망을 기원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새해가 시작될 때는 혼자서라도 지난 1년의 생활들을 평가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할 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자(planner)가 금연, 다이어트, 저축, 독서 등을 항목에 포함시켜 미래가 윤택해질 수 있도록 계획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계획들을 막상 실현할 때가 되면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주장했던 미래보다 오늘의 쾌락을 더 좋아하는 행동자(doer)가 자신을 합리화하는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계획자(planner)의 멋진 미래를 망칠 수 있다.

2020년 세웠던 목표들을 중도 포기했던 사람들은 계획자(planner)의 의지보다는 행동자(doer)의 '유혹'이 자신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지난해와 달리 행동자(doer)의 방해를 이기고 계획자(planner)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행동자(doer)의 공격 코스를 잘 알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통제력이 약하고 오늘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편익을 추정할 때 쌍곡형할인(hyperbolic discounting) 태도를 취한다. 즉 미래의 가치를 과도하게 폄하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리처드 세일러 교수와 같은 행동경제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가까운 미래보다는 먼 미래에 얻는 이익을 지나치게 저평가하는 쌍곡형할인(hyperbolic discounting) 현상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1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대신 1개월을 기다린 후 받아야 할 적정 금액을 묻는다면 평균적으로 1만원 혹은 5000원 정도의 기다린 대가를 더해 11만원 혹은 10만5000원으로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10만원 대신 2년 후에 받을 적정 금액으로 질문을 바꾼다면,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10만원을 포기하는 대가를 5만원 혹은 그 이상으로 크게 인상할 것이다. 실제로 행동경제학자들은 설문 조사를 통해 장기로 갈수록 요구하는 수익률이 증가하는 현상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사람들이 신년 목표를 세울 때는 이성적인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얻게 될 편익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목표를 완수하면서 어려운 고비 때마다 등장하는 근시안적인 '행동자(doer)'의 편의(bias)를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즉 목표를 성취하려고 노력할 때 겪는 금단 증상이나 배고픔을 큰 고통으로 인식하면서 1년 후 건강해진 육체나 멋진 몸매는 폄하려는 '자기 합리화'의 루틴을 이겨내야 한다. 이 같은 행동자(doer)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행동자(doer)가 먼 미래의 이득은 지나치게 저평가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는 비교적 후한 평가를 하는 특성을 잘 이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와 힘든 운동을 할 때 미래의 건강과 같은 편익은 행동자(doer)의 유혹을 충분히 뿌리칠 수 있는 보상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작은 성공에 걸맞은 적절한 인센티브를 행동자(doer)에게 제안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나(행동자)가 '미래의 나(계획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정하는 것 못지않게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디테일한 장치들을 준비하고, 점검해야 한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었던 오디세이와 같이 선제적인 예방책을 마련하고,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도록 적재적소에 포기하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작지만 알찬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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