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선인이 우물에 독 타“ 지진때마다 日'혐오발언' 왜 반복되나

입력 2021.02.20 06:01:00 수정 2021.02.24 16:18:01
  • 공유
  • 글자크기
[한중일 톺아보기-43]
지난 14일 일본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시의 도로가 전날 발생한 지진 여파로 인해 토사로 뒤덮여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4일 일본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시의 도로가 전날 발생한 지진 여파로 인해 토사로 뒤덮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일본 후쿠시마와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150명이 넘는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특히 이번 지진은 발생 시기와 지점, 강도 등 여러 면에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높아진 불안감 속에 일본에서는 이번 지진이 3.11 동일본 대지진의 여진인지, 언제 대규모 지진이 올 것인지 등에 대한 추측이 무성한 상황입니다.

13일 지진 직후 트위터에 올라온 "조선인이 후쿠시마 우물에 독을 타고 있는 것을 봤다"는 트윗. 
<br><br>일본 네티즌들의 항의 쇄도에 해당 트위터 계정은 삭제된 상태지만, 장난일 뿐 차별 선동은 아니라는 네티즌도 있었다/사진=트위터 캡처
<br><br>이미지 크게보기
13일 지진 직후 트위터에 올라온 "조선인이 후쿠시마 우물에 독을 타고 있는 것을 봤다"는 트윗.

일본 네티즌들의 항의 쇄도에 해당 트위터 계정은 삭제된 상태지만, 장난일 뿐 차별 선동은 아니라는 네티즌도 있었다/사진=트위터 캡처

그런데 이런 와중에 한국인들을 경악케 하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지진 직후 한 트위터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며 원인을 한인들에게 돌리는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 트윗이 게재됐던 겁니다. 해당 문구는 주지하다시피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발생한 '관동대지진' 직후 유포됐던 악성 유언비어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학살됐다는 기록을 상기한다면,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도가 지나친 행위였습니다.
'지진 왕국' 日…전 세계 규모 6.0 이상 강진 약 20% 나타나
그래픽=조보라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조보라 일본은 태풍,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뉴스는 한국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어느 시간대든 기상 예보를 다루는 비중이 큽니다. 자연재해 중에서도 특히 지진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일본은 20세기 이후 관동 대지진, 한신 대지진, 그리고 3·11 대지진 이라는 거대한 충격을 3차례나 겪었습니다. 특히, 3·11대지진은 일본 전후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건으로 아직도 산적한 후유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규모 6.0 이상 강진의 20% 가량이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운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과학자들은 오히려 이런 위치 덕분에 일본의 영토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동일본·구마모토 지진 때도 등장한 '그 혐오발언'
그래픽=조보라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조보라 사실 일본에서 이번에 논란을 낳은 것과 유사한 혐오발언은 예전부터 반복돼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3·11대지진 직후 인터넷상에는 "시체에서 금품을 훔치는 조선인이 있다"는 식의 루머가 만연했었죠. 그러나 당시 피해지역인 미야기현에서는 지진 이후 1개월간 발생한 강도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수십 건 감소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직후에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폭동을 일으켰다"는 괴소문이 SNS를 타고 유포된 바 있습니다. 3·11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범람했던 유언비어의 추이를 살펴보면, 강진 등으로 큰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급증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일본의 사이버 공간에서 명예훼손·중상비방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 건수 역시 지난 10년 새 3배 넘게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죠.
1923년 9월 10일 관동 대지진에 대한 홋카이도 타임스 기사.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이미지 크게보기
1923년 9월 10일 관동 대지진에 대한 홋카이도 타임스 기사.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재난 때 유언비어가 쉽게 퍼지는 건 어디서든 발견되는 현상이라지만, 일본의 경우 혐오성 루머의 주 타깃은 언제나 소수자와 약자들, 특히 재일교포들이 돼 왔습니다. 실제로 3·11대지진 이후 혐한 시위에서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혐오 단어가 등장 했습니다. '불령선인'이란 일제강점기 치안 당국이 조선인을 탄압할 때 쓰던 표현으로, 관동대지진 학살을 유도한 관제 유언비어를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한국 외교부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혐한 시위 건수는 2009년, 2010년엔 30여 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3·11대지진이 발생했던 2011년에는 80건 이상으로 늘었고 2012년에는 300건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곧 일본 내에서 혐한 기류가 불기 시작한 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덴노 사죄 발언 이전부터 혐한 시위는 늘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 혐한 등의 단어는 현대에 이르러 생겨났지만, 이에 해당하는 행위는 1세기 전에도 이미 존재했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혐오발언 일삼는 '넷우익' 논리, 대지진 학살범과 판박이
관동 대지진 당시 자경단원들과 학살된 조선인(좌)/관동 대학살 희생자 유족으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다 노환으로 사망한 조팔만씨/사진=연합뉴스이미지 크게보기
관동 대지진 당시 자경단원들과 학살된 조선인(좌)/관동 대학살 희생자 유족으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다 노환으로 사망한 조팔만씨/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일본에서 지진 때마다 고개를 드는 혐오발언의 중심에는 역시 '넷우익'(인터넷에서 과격한 차별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논란을 낳은 트윗 역시 그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의 언행과 논리를 살펴보면,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범들의 변명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넷우익이 재일교포들을 범죄집단으로 묘사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배경에는 강한 '배외주의'적 편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출신이라는 이질적 집단은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혐오스러운 존재이고, 자신들은 "일본을 지키는 애국자"라는 겁니다. 그들은 재일교포들과 한국으로 인해 일본이 위기에 빠졌다고 믿으며, 각종 혐오발언을 온라인 그리고 오프라인에서까지 퍼뜨려 왔습니다.

관동대지진 때도 조선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일부 일본인들은 유언비어를 광신했으며, 이를 전파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경단을 조직해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는 등 별다른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1차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학살을 조장한 당사자가 일제 관헌이었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사태 이후 체포됐던 일부 자경단원들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문을 믿었다" "애향심 또는 애국심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넷우익 역시 과거 자경단원들처럼 재일교포들을 '해로운 외부자'로 인식하고 있고, 이에 근거해 혐오발언을 일삼고 있는 겁니다.
재일교포 겨냥한 '日배외주의' 뿌리는 역사수정주의
역사수정주의로 유명한 새역모 교과서. 관동 대지진 서술에 있어서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다룬 내용은 전혀 없다이미지 크게보기
역사수정주의로 유명한 새역모 교과서. 관동 대지진 서술에 있어서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다룬 내용은 전혀 없다 일본의 극우·배외주의 전문가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 교수에 따르면, 이민자 전체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서구식 배외주의와 달리 일본 배외주의 운동은 유독 한국을 겨냥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히구치 교수는 "중국인 배척을 외치는 단체도 있지만 표적이 되는 건 압도적으로 재일교포"라며 "그 최대 원인은 이 같은 일본식 배외주의가 '역사수정주의'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에서 역사수정주의가 대두한 배경에는 극우세력의 관심 변화가 자리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냉전 때까진 군사·방위 문제에 쏠려 있었지만, 냉전 종식 이후 역사로 옮겨가면서 역사 문제가 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됐습니다. 주목해야 할 시점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라는 시민단체가 발족한 1996년 전후입니다. 현재 일본 우익세력이 갖고 있는 역사 인식은 이 단체에서 받아들인 부분이 큽니다.

새역모를 만든 모체는 '자유주의사관연구회'라는 곳으로, 이들이 내세운 '자유주의사관'은 곧 일본의 기존 역사 기술을 모두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역사수정주의가 됐습니다. 2001년 새역모가 내놓아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던 후소샤 역사교과서는 일선 학교에서 거의 채택되지 않는 등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이후 인터넷의 보급과 맞물려 수정주의 역사관을 일본 사회에 침투시키는 데 성공했죠.

이후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계속 맹위를 떨쳐 왔습니다. 그리고 관동대학살 사건 또한 10여 년 전부터 역사수정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9년에 출간된 한 역사서적은 자경단과 관헌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피살자 규모를 축소하는 데서 더 나아가,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도 사실인 것처럼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더불어 유력한 역사수정주의자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당선 이후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에 대한 연례 추모행사에 추도문 송부를 계속 중단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사회 넷우익 2% 불과 하지만...점점 목소리 커져
지난 2012년 넷우익 단체 재특회 회장이 가두에서 혐오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2016년 일본제일당을 창당했지만 아직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없으며 정당요건도 갖추지 못했다/사진=유튜브 캡처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12년 넷우익 단체 재특회 회장이 가두에서 혐오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2016년 일본제일당을 창당했지만 아직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없으며 정당요건도 갖추지 못했다/사진=유튜브 캡처 극단적 성향인 넷우익은 비율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극소수입니다. 2014년 오사카대학의 조사 결과, 일본 전체 인구에서 넷우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2% 정도로 추정됐습니다. 넷우익에 동조하는 층을 합쳐도 6%에 불과했죠. 그럼에도 그들의 발언이 크게 들리는 건 SNS 활동에 적극적이며 '전쟁' '영토 회복' 등 자극적인 단어로 적을 명확히 설정해 대중에 쉽게 어필하기 때문입니다.

혐한 전문가이자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는 "과거 '인터넷 바보들의 모임'으로 취급받던 넷우익이 어느새 일본 정치인들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고 지적합니다. 계속되는 한일 갈등, 한국에 대해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미디어, 그리고 정치사회적으로 우경화된 일본의 상황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는 넷우익이 활동하기 좋은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넷우익들이 재일교포를 대상으로 혐오발언을 일삼는 배경에는 자신들에게서 일자리, 영토, 복지 등을 빼앗아 갔다는 피해망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야스다 고이치는 장기 불황과 양극화, 그리고 3·11대지진의 충격이 더해져 넷우익이 자라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경제적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낮아진 자존감을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워 보상받으려 한다는 겁니다. 훨씬 낙후된 나라였던 한국이 일본을 비판하는 것이 못마땅하거나, 한국의 성장이 일본을 위협한다고 느끼게 되자 이에 대한 반감이 혐오발언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한편으론 재일교포에 대한 혐오발언과 시위가 급증하는 현상을 일본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방증으로 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일본 국민들 스스로 민주화를 일궈낸 경험이 없는 점도 한 몫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내 양심세력은 작은 희망…연대 모색해야
지난 2017년 9월 도쿄에서 시민들이 관동학살때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도하고 있다(좌)/사진=연합뉴스/ 재일교포들이 오오카와 서장의 행동을 기리기 위해 1953년 그가 영면한 절에 세운 비석(우)/사진=방재시스템연구소 홈페이지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17년 9월 도쿄에서 시민들이 관동학살때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도하고 있다(좌)/사진=연합뉴스/ 재일교포들이 오오카와 서장의 행동을 기리기 위해 1953년 그가 영면한 절에 세운 비석(우)/사진=방재시스템연구소 홈페이지 어느 한쪽이 이사를 가거나 일본이 가라앉지 않는 한, 좋든 싫든 한일 양국은 영원히 이웃이어야 하는 숙명적 관계입니다. 때문에 가능한 한 적대관계가 되지 않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민족 차별과 혐오가 범죄행위라는 상식이 일본에서 통용되도록 보다 현실적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익들의 혐오발언 등을 이유로 일본 전체에 등을 돌리기보다, 일본 내 양심 세력들과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 특히 재일교포에 대한 혐오 현상이 단시간 내 해결될 리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 문제의 당사자인 만큼 더욱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본에서도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자성의 목소리는 항상 존재했다는 겁니다. 2013년 혐한 시위대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생긴 '카운터스'가 대표적 예입니다. 이들의 활동은 일본에서 '혐오표현 금지법' 제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지난해에는 가와사키시 시민들이 나서 혐오발언에 벌금형을 규정한 조례를 일본에서 처음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100년 전에도 양심적인 일본인은 있었습니다. 바로 가나가와현의 경찰서장 이었던 오오카와 쓰네키치(大川常吉)입니다. 그는 관동대지진 당시 목숨을 걸고 조선인 수백 명을 자경단으로부터 지켜낸 인물 입니다. 혐한 유언비어가 기승인 요즘 오오카와 서장의 미담은 더 눈길을 끕니다. 만약 더 많은 일본인들이 오오카와 서장과 같은 사례를 귀감으로 되새겨 나갈 수 있다면, 끔찍한 혐오발언도 민족차별도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지 모릅니다. 일본식 배외주의를 해결하는 지름길인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양국 시민사회 차원에서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때입니다.

[신윤재 기자]
※톺아보다 란 "샅샅이 뒤지며 찾아본다" 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코너로,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통해 매주 찾아갑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