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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온 돌 윤석열은 박힌 돌들을 빼낼 수 있을까?"

입력 2021/06/09 06:01
수정 2021/06/10 10:07

윤석열 전 총장 /사진제공=연합뉴스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70]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지인들에게 "백넘버 2번을 달고 대선에 나가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제3 지대나 신당 창당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뜻이죠. 선거는 조직과 돈이 있어야 합니다. 네거티브 공세에 방어막도 필요합니다. 국민의힘에 들어가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인기몰이를 하는 과정에서 입지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안착하려면 박힌 돌들을 빼내는 돌파력이 필요합니다. 입당 전에 확실하게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심판을 받기 전에 국민의힘 터줏대감인 중진들의 입김에 밀려 죽도 밥도 안 되는 신세로 몰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 전 총장이 참고해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진(晉)나라 군주인 도공입니다.

그가 권좌에 오른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윤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다를 바 없습니다. 여공이 진나라 권문세가의 반란으로 시해되지 않았다면 그는 주나라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의 고조부가 진나라를 패권국으로 세웠던 진문공입니다. 그는 문공의 아들 양공의 직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서자였기에 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주나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곳에서 도공을 낳은 것이지요.

진여공이 간신인 서동의 무리를 총애하자 진나라 유력 가문 출신의 권신들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여공을 독살한 뒤 권신들은 후계자로 주나라에 있는 도공을 주목했습니다. 비록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양공의 직계손이고 영특하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죠. 진나라 실력자인 순언은 도공을 옹립하려고 주나라로 영접단을 보냈습니다. 당시 도공의 나이는 14세였습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너무 어렸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든 도공은 용의주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군주로 세우려고 진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동안 벌어진 일을 자세하게 물었습니다. 진나라 권력 판도나 백성들의 여론, 주변국들과의 관계 등 국정 전반에 대해 꼼꼼하게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귀국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가 진나라에 도착했을 때 난서와 순언 등 대신들이 집결했습니다. 그들을 불러 그는 다음과 같은 다짐을 받았습니다. "과인은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로 떠돌면서 귀향할 희망도 갖지 못했소. 그런데 어찌 임금이 되길 바랄 수 있었겠소? 임금된 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명령을 스스로 내리는 것이오. 만약 임금 명칭만 떠받들면서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임금이 없는 것이 더 나을 것이요. 경들이 과인의 명령에 기꺼이 따르려면 오늘 바로 결정해야 할 것이오.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기 바라오. 과인은 윗자리에서 허울뿐인 이름만 안고 대신들에게 버림받은 여공의 뒤를 따를 생각은 없소."

그야말로 당찬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신들은 모두 몸을 떨었습니다. 한 신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분은 여공과는 차원이 다른 군주가 될 것이오. 마땅히 조심해서 섬겨야 할 것 같소이다." 도공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국정을 쇄신했습니다. 진여공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간신들을 숙청하고 여공 시해에 직접 가담한 사람들의 죄도 물었습니다. 늙은 대신들을 배척하고 신진을 대거 발탁했습니다. 가장 파격인 인사는 조씨 가문의 유일한 혈족인 조무를 중용한 것입니다.

조씨 가문은 전 세대에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군주의 사주를 받은 도안고는 조씨들을 한 명도 남김 없이 죽였습니다. 이때 갓 태어났던 조무는 조씨 문객이었던 정영과 공손저구의 희생을 통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흘러 조무는 도공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 됐습니다. 조씨 가문과 친했던 한궐이 도공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알리면서 조무를 추천했습니다. 이에 도공은 조무를 불러 중책을 맡겼고 조씨 가문을 멸한 도안고를 제거했습니다.

인적 쇄신을 단행한 도공은 군대를 정비하고 선대 군주들의 잘못된 정치로 피폐해진 민생을 돌아보았습니다.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율을 낮췄고 밀린 세금은 탕감해 주었습니다. 제도를 정비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노역을 줄였습니다. 홀아비와 과부 등 취약계층과 빈민을 구제하는 데도 힘을 썼습니다. 진나라는 패권국의 면모를 되찾기 시작했고 주변국들도 조공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추진력에 대신들도 탄복했습니다. 진도공은 굴러온 돌이었지만 실력으로 박힌 돌을 빼내고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면 도공의 사례를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지도력과 추진력을 보여준다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일단 들어가서 부딪쳐 보겠다고 하면 의외의 복병을 만나 고전할 수 있습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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