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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대통령 출마하면 배신자인가?

입력 2021/07/20 06:01
수정 2021/07/21 06:03

국민의힘 유력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예방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세형 칼럼] 정치인과 배신자는 어쩌면 동의어인지 모른다.

한국 정치사에서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등등 배신자라는 욕을 안 들어 먹은 이가 거의 없다.

왜 수많은 비난을 놔두고 하필이면 배신자(betrayer)란 프레임으로 상대를 비난한 것일까.

그것은 피해를 최대한 끌어올릴 가장 극단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당의 3부로 구성되는데 그 가운데 지옥편이 단연 길고 지옥 중의 지옥이랄 수 있는 가장 밑바닥 9단계에는 생전에 '배신자'들이 가장 혹독한 처벌을 받는 장소다.

우리가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예수를 팔아먹은 가룟 유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배반한 브루투스가 지옥 바닥에서 벌 받는 모습을 단테는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5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권행보에 나서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를 배신자라고 헐뜯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다 지난 3월 사표를 내며 문재인정부를 혹독하게 비난하자 역시 배신자 용어를 동원했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봤느냐, 대권 꿈을 품었으니 감사원장 자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게 아니냐 등등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배신자는 지옥에서도 최고의 악덕이기에 "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선 절대 안 된다"며 유권자들에게 악소문을 내고 싶은 심리다.

여권이 윤석열, 최재형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이 차지했던 검찰총장, 감사원장이란 자리로 출세시켜 줬더니 단물만 쏙 빼먹고 그 자리를 대권행보로 써먹었다는 주장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은 한직에 있던 사람을 중앙지검장이란 요직을 거쳐 5기수를 뛰어넘어 벼락출세시켜줬는데…" 언감생심 역모(?)를 꾀한다는 식이다.

감사원장은 정부 서열에서 총리, 선거관리위원장 바로 다음으로 홍남기 경제부총리보다 높다. 청와대도 감사하는 무소불위(?)의 위치이므로 여간 대통령이 믿지 않으면 줄 수 없는 자리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월성1호기 감사 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1%밖에 안 되는데 탈원전이 국민적 합의라 볼 수 있느냐"며 백운규 산업장관을 몰아붙인 것으로 돼 있다.

김오수 법무차관(현 검찰총장)을 감사위원으로 추천하려 하자 "중립성을 해친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은 "(최재형을) 탄핵해야 한다" "정치를 하려거든 나가서 해라"고 국회로 불러 혼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문 대통령이 임명장을 준 자리에서 "살아있는 권력도 과감히 수사하라"는 말만 믿고 조국 법무장관 패밀리를 추미애식 표현에 따르면 탈탈 털었다가 미운털이 박혔다.

조국 전 장관은 작년 10월 14일 문 대통령에 대한 여론 지지율이 (40%대가 깨져) 첫 39%를 기록한 날 35일 만에 단명 장관으로 사표를 내야 했다.

일주일 후 2020년 10월 20일 최재형 감사원장이 월성1호기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위법 사항을 검찰에 고발하자 윤석열 검찰총장은 기다렸다는 듯 민완검사 100명가량을 바로 투입해 수사에 나섰다.

알 속의 병아리는 안에서 쪼고 밖에서는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돕는 줄탁동시(啐啄同時)를 두 사정기관장은 연출한 셈이다.

두어 달 전 그해 여름 우파는 광화문, 좌파는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날밤을 지새우며 반조국, 친조국으로 갈려 데모를 하고 국민 여론은 완전 두 동강이 났다.

문 대통령은 광화문-서초동 분열 시위를 말리지 않고 “자연스러운 국민의 의사 표현”이라고 놀랍게도 두둔했다.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을 쫓아내려는 공작이 집요할수록 보수진영 대권 지지율 1위가 됐고, 국회에 불려가 소신껏 반론을 펼치는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해 "저 사람은 누구냐"는 여론의 시선이 꽂혔다.

윤석열(60) 최재형(64) 두 사람은 원래 대통령 꿈이 있었으면 그 나이 될 때까지 사정기관의 장을 하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자 보수진영에서는 정치 의사를 타진하면 그의 경기고, 서울대 법대 동기들부터 "그 사람은 정치 자질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작년까지만 해도 대권에 나서리라곤 본인도 몰랐다고 석동현 변호사 등 친구들은 말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월성1호기 수사로 백운규 장관을 기소하고 청와대를 겨냥하자 바로 '업무정지'가 떨어져 더 이상 검찰총장을 못 하게 돼 사표를 냈다고 해명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국회만 불려가면 정치 행보 질의를 추궁당하고 청와대와 관계상 더 이상 감사원장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배경을 설명했다.

두 사람이 본인들의 일자리가 싫어서 사표를 낸 것까지는 알겠는데 공교롭게도 정반대 세력의 대권후보 1, 2위를 기록하자 민주당, 청와대는 즉각 배신자 프레임을 동원한 것이다.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오전 광주 북구 5·18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고 떠나며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신이 고위직을 했던 여권을 박차고 나가 제1야당의 대권후보로 나가면 배신자가 되는 게 맞는가?

한국 정치사는 이에 대해 진지한 물음과 해답을 찾을 때가 됐다고 본다.

먼저 법적으로 따져보자.

헌법 7조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돼 있다. 7조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에 의해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 다 헌법적 가치에 충실했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라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두 사람을 요직에 기용한 것은 특혜보다 그들의 능력을 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된 해명은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해 인사와 업무를 밀어쳤으며 위법을 묵과하면 나라가 큰일 나게 생겨서 (대권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서로가 헌법을 어겼다고 우긴다.

둘째, 배신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단테 지옥편의 제1구역 카이나에는 혈연을 배신한 자, 제2구역 안테노라에는 조국과 당파를 배신한 자, 제3구역 톨로메아에는 친구와 손님을 배신한 자들이 옥고를 치르고 있다.

여기서 보면 조국에 대한 배신이 눈길을 끈다. 누가 누구를 배신자라고 감히 칭죄할 주체가 되느냐는 자격에 관한 문제다.

예수를 팔아먹은 가룟 유다는 세계인에게 이의 없이 배신자 1위이다.

그런데 카이사르 황제가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했을 때 과연 공화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브루투스가 아니라 카이사르가 배신자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올랑드 사회당 정권에서 경제장관을 하다가 38세에 박차고 나가 앙마르슈(En March·전진)라는 정당을 창당해 권력을 잡았지만 아무도 배신자라 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사에서 김영삼(YS)은 오직 대통령에 당선되고자 3당 합당을 했다가 민주화 세력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고, 김대중(DJ), 김종필(JP)도 이회창을 물리치기 위해 DJP연합을 했다가 같은 욕을 먹었다.

이회창은 YS 덕분에 대선후보가 됐으면서도 대선 막바지에 YS의 인기가 없자 그를 출당시키고 화형식을 해 똑같은 배신자 소릴 들었다.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옷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면서 임기 중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그 예의 나쁜 욕을 들어먹었다.

2021년 7월 말 시점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배신자라 부르는 국민은 없는 것 같다. 설득력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이 임기를 끝내지 않고 대선후보가 된 상황에 대해 김황식 전 총리, 황찬현 전 감사원장, 성낙인 전 총장, 허영 교수 등에게 물어봤다.

그들의 답변은 매우 심플했다. "모양이 예쁜 것은 아니지만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관두는 것이고, 대통령 출마 여부는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것.

2022년 대선 8개월을 앞두고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이 야당 대권후보 1, 2호가 된 데는 본인의 행보 때문일까, 문 대통령을 위시한 여당이 상황을 그리 몰고 갔을까.

이것은 단테의 지옥 2구역에서 과연 누가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느냐는 주체적 자격의 문제다.

그것을 결정할 최종적인 주체는 국민, 곧 유권자이며 내년 3월 9일 그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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