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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은 사실인가 정치 공작인가

입력 2021/09/14 06:01
수정 2021/09/14 11:06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찰총장 재직당시 검찰이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야당에 전달했다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한주형 기자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81]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고발 사주 의혹'으로 정치권이 시끄럽습니다. 검찰이 감찰에 착수한 데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가는 등 강제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의혹의 당사자인 윤 전 총장은 자신을 죽이기 위한 정치 공작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고발을 사주한 정황이 뚜렷하다고 하는 측과 정치 공작이라는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어 실체를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후폭풍이 클 것은 분명합니다. 내년 대선 흐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겠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 주변에는 음흉한 정치꾼이나 간신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주로 정치 공작을 꾸밉니다. 경쟁자를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죠. 기원전 6세기 초나라에도 정치 공작에 탁월한 간신이 있었습니다. 비무극입니다. 그는 정치 공작으로 채나라 군주를 쫓아냈고 초나라 세자를 사지(死地)로 내몰았습니다. 권력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가문들을 도륙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자서'라는 영웅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오자서는 비무극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처형되자 오나라로 망명했고 오왕 합려의 힘을 빌려 초나라에 복수합니다. 그는 후진국이었던 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초나라 공격 때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를 발탁한 사람도 오자서입니다.

비무극의 정치 공작은 '신부 바꿔치기'에서 시작됐습니다. 비무극은 초나라 세자 건과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세자가 왕이 되면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상하기 힘든 정치 공작을 꾸몄습니다. 세자를 제거하려면 아버지인 초평왕과 이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틈이 없었습니다. 세자는 효자였고 왕의 명령을 잘 따랐습니다. 평왕도 세자의 착한 성품을 인정하고 있었죠.

어느 날 그는 평왕에게 세자의 혼사를 권합니다. 강대국인 진(秦)나라와 혼인 관계를 맺으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했습니다. 이에 평왕은 비무극을 진나라 사신으로 보내 신부를 요청했습니다. 진나라도 세력이 커지고 있는 초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으면 나쁠 게 없었습니다. 진나라 군주는 자신의 여동생인 맹영을 출가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맹영을 본 비무극은 평왕와 세자를 이간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가장 본초적인 욕망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는 신부 대열이 초나라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귀국해 평왕을 만납니다. 평왕이 신부의 용모를 묻자 대답합니다. "많은 여인을 봤지만 맹영만 한 미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평왕이 아쉽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좌우 시종을 물러나게 한 뒤 평왕에게 은밀한 제안을 합니다. "왕께서 맹영을 직접 취하시죠." 왕은 얼굴을 붉히며 답합니다. "며느릿감으로 맞았는데 인륜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비무극은 재차 권합니다. "상관없는 일입니다. 맹영은 아직 동궁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맹영을 따라 오는 잉첩 중에 세자와 혼인할 여인을 물색했습니다. 제나라 여자인데 용모가 비범합니다. 그러니 왕께서 먼저 맹영을 맞으시고 이후 제나라 여인을 동궁으로 보내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신부 바꿔치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평왕과 비무극은 극비리에 일을 추진했지만 궁궐의 비밀은 지켜질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맹영에 반한 평왕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여색을 즐기기에 바빴습니다. 세자가 맹명을 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니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 없었지요. 사실 이게 비무극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릅니다. 평왕은 맹영을 가로챈 사실이 세자 귀에 들어갈까 봐 불안했습니다. 비무극은 왕의 이런 마음을 파고들어 세자를 멀리 북방으로 보내라고 제안합니다. 그런 뒤에 세자가 반역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참소합니다. 당시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는 세자를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왕에게 세자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신부를 바꿔치기한 사실을 비판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쓴 소리를 쏟아낸 것이었죠. 화가 난 평왕은 오사를 옥에 가두고 세자를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죠. 급보를 전해들은 세자는 재빨리 송나라로 도주합니다. 이로써 비무극의 정치 공작은 성공을 거둡니다.

여기서 폭주를 멈췄다면 훗날 오자서의 복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무극은 악랄하고 집요했습니다. 오사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오상과 오원(오자서)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죠. 평왕도 여기에 동조해 오사에게 두 아들을 부르는 편지를 쓰라고 강요합니다. 오사는 어쩔 수 없이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의 맏아들 오상은 온화하고 어진 성품을 가지고 있어 신의 부름을 받고 반드시 올 겁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 오원은 앞날을 예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장차 허물을 덮어쓰고 치욕을 참으며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아이가 아비가 부른다고 기꺼이 달려오겠습니까?" 오사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오상은 처형될 것을 알면서도 부친에게 왔고 오자서는 오나라로 달아났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주장한 대로 고발 사주 의혹이 정치 공작으로 밝혀지면 관련자들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비무극의 더러운 정치 공작이 단초가 돼 초나라는 수도가 오나라에 점령되고 평왕은 죽어서도 그의 시신이 매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비무극도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초나라 백성도 큰 고초를 겪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국가를 불행에 빠뜨리는 정치 공작을 막으려면 국민 모두 감시의 눈을 더 크게 떠야 할 것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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