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중국발 공급망 쇼크…반도체·에너지 기업 "수입 원자재 신속통관 해달라"

입력 2021/10/09 11:01
수정 2021/10/11 03:48
[MK위클리반도체] 중국 전력난이 반도체부터 정보기술(IT)·자동차·배터리 등 한국 주요 산업의 공급망 위기로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공급망 쇼크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기업들은 수입 원자재의 신속 통관과 중장기 수급 안정화 등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요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일 오후 박진규 제1차관 주재로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글로벌 공급망 이슈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전자·전지·섬유·철강·기계·조선·석유화학·석유 등 주력 업종을 대표하는 산업단체 임원들이 참석했다. 산업부와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전력난 상황과 업종별 원자재 수급 관련 애로·건의사항을 공유했다. 박 차관은 "완전한 회복을 위해 중요한 시점에서 글로벌 공급망 이슈들이 우리 경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선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시 황하항에 석탄을 실은 운반선이 정박해 있다. <창저우=신화연합뉴스>


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중국 내 전력난이 연말을 넘길 정도로 길어지면 중국 내 한국 기업의 공장들은 물론 중국산 원자재 수급에 중대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들은 이와 관련,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중국산 원자재의 신속 통관과 차량용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의 수급 안정화를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최근 중국 원자재 폭등세는 '수직 상승'에 가까울 정도다. 중국 정부는 전력난이 극심해지며 원자재를 생산하는 공장 가동을 거의 멈추다시피하고 있다. 광산업계는 내년 2월 열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선제 규제 조치라고도 해석한다.

중국 산시성 정부는 지난달 성내 마그네슘 제련 기업 30곳에 연말까지 가동을 일시 중단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지시를 내리자마자 t당 3000달러선을 유지하던 마그네슘 가격은 단숨에 5000달러를 넘어 이달 초 8250달러(약 980만원)에 이르렀다. 국제마그네슘협회(IMA)는 "전례 없는 가격 상승으로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내년 상반기가 돼야 가격이 진정될 듯하다"고 내다봤다.

반도체업계에 닥친 건 황린(백린)과 텅스텐, 규소(메탈실리콘) 가격 폭등이다. 인광석을 기반으로 만든 화합물인 황린은 낸드플래시 공정에 필수 소재로 쓰인다. 또 텅스텐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육불화텅스텐(WF6)의 원료다. 육불화텅스텐은 반도체에 전기 회로를 따라 금속으로 전기 배선을 내는 금속 배선 공정에 필요하다. 이 밖에 규소(메탈실리콘)는 반도체 원판(웨이퍼)의 기초 재료일 뿐 아니라 태양광 패널용 폴리실리콘의 필수 원료이기도 하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기준 세계 텅스텐 생산량의 82.1%, 규소 67.5%, 황린 40.3%를 차지했다. 무게가 가벼운 데다 전기 차폐율이 높아 스마트폰·PC부터 항공우주·자동차 소재로 쓰이는 마그네슘의 중국산 점유율은 90%에 이른다.

중국 지방정부는 최근 전력난을 이유로 이들 광물·희토류의 생산을 전방위로 통제하고 있다. 중국 윈난성 정부는 지난달 중순 성내 황린·규소를 생산하는 업체들에 평소 생산량의 90%를 줄이라고 지시했다. 쓰촨성 정부도 마찬가지로 규소 생산 감량을 명령한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정부의 생산 통제는 고스란히 이들 광물의 공급망 쇼크로 이어지고 있다. 텅스텐 카바이드 가격은 이달 1일 기준 1년 새 37% 올라 1㎏당 40달러25센트가 됐다. 규소는 지난 7월 1만4408위안(약 265만원)이던 것이 이달 4일 6만833위안으로 무려 322% 뛰었다. 황린 가격도 같은 기간 1만9450위안에서 6만위안으로 204% 뛰었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텅스텐이나 규소 외에도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필수 광물들의 가격이 오르거나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업계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직접 광산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라고 전했다.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반도체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완제품에 즉각 반영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반도체 대기업의 임원은 "코로나19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대로, 반도체 제조사들은 10~20% 정도 계약 가격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 고객에 전가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상당 부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가전 등 IT 제조사들도 마그네슘 공급난에 발을 구르고 있다. 마그네슘이 스마트폰과 PC, 각종 전자기기 케이스를 만드는 필수 소재이기 때문이다. IT 제조사들은 이미 반도체 품귀에 코로나로 인한 동남아시아 공장 가동 차질에 더해 마그네슘 부족까지 겹쳐 피해가 더욱 클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 제조업계는 중국 공장의 가동 차질도 염려하고 있다. 위니아전자는 중국 톈진의 가전 공장을 현지 정부 지침에 따라 야간에만 가동하고 있다. 삼성전기 톈진 공장도 간헐적으로 전력 공급이 제한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도 대성산업가스 등 인근 협력사들의 원활한 가동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광저우 일대를 관할하는 광둥성 정부는 이달 들어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25% 인상한 상태다.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우시의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은 정상 가동하고 있지만 협력사들의 생산 차질에 따른 피해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유가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전광판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전일 대비 2.29% 오른 77.62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도 전일 대비 각각 2.50%, 1.97% 올랐다. /사진=김호영 기자


이런 가운데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원유에서 뽑아낸 '납사'와 '프로판(LPG)'을 원료로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데 원유 가격과 함께 LPG 가격까지 빠르게 오르면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국제 LPG 가격은 지난 3월 t당 500달러 후반이었으나 이달에는 800달러선에 거래되고 있다. 7개월 만에 30% 가까이 가격이 오른 셈이다.

LPG가 원유 정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원유 가격이 오르면 LPG 가격 또한 오르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의 가격 상승은 과도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또 겨울철 난방수요 증가도 예고되어 있는 만큼 향후 LPG 가격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프로판을 수입해 플라스틱 원료를 만들어 판매하는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마진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이종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