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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 기술 응용한 과학..계란 노른자 들고 머리카락 집는 섬세한 로봇 기술 개발 [사이언스라운지]

입력 2022/02/05 06:01
[사이언스라운지] 종이를 오려서 여러 모양을 만드는 종이 공예 원리를 이용해 날달걀의 노른자도 터트리지 않고 집을 수 있는 로봇 기술이 개발됐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진은 종이 같은 2차원 시트를 자르고 접어 3차원의 입체 구조를 만드는 방식을 활용해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 그리퍼(Gripper·쥐는 도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신호에 게재됐다.

기리가미 기법을 활용해 개발한 달걀 노른자를 깨지 않고 들어올릴 수 있고, 사람의 머리카락을 집는 로봇기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그리퍼를 만드는 핵심 원리는 '기리가미'다. 기리가미는 종이를 오린다는 뜻의 일본어로, 접은 상태 종이를 잘라 다양한 입체 모양을 만드는 종이 공예를 말한다. 종이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인 '가미'와 자른다는 뜻의 '기루'를 합쳐 만든 용어다. 연구진은 2차원 평면 소재 시트 안쪽을 타원형태로 촘촘히 잘랐다. 기리가미 기법을 적용한 종이나 소재들은 평면에 두면 2차원 시트 형태로 있지만, 이를 들어올리거나 비틀면 3차원 형상이 된다.

집게와 같이 물건을 쥐는 도구들은 보통 물건과 닿는 부분에 압력을 가해 물건을 쥐고 들어올린다. 하지만 기리가미 원리를 활용한 그리퍼는 마치 망 같은 입체 구조의 물질이 물체를 둘러싸 고정한 후 물건을 들어올린다. 교신저자인 인 지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부교수는 "마치 물체 주위에 손을 감싸는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밀도를 개선하지 않고도 섬세한 물체들에 충격을 주지 않고 잡아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개발된 로봇 기술은 섬세한 작업이 가능해 깨지기 쉬운 물체를 들고 옮겨야 하는 산업 현장에 사용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무릎이나 팔꿈치를 쉽게 구부리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스마트 붕대'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기리가미 기법으로 만든 스탠트 <사진출처=MIT>


기리가미는 이번 연구 외에도 과학계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브리검 여성병원 연구진은 위장관과 호흡기 같은 관 형태 신체 기관에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스텐트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리가미 기법으로 칼집을 낸 실리콘 재질 스텐트 안에는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미세한 바늘이 들어 있다. 이 바늘은 스텐트 삽입 과정 시 몸 속에서 튜브를 늘릴 때 튀어나와 약물을 전달한다. 연구저자인 지오바니 트라베르소 MIT 기계공학 교수는 "국소부위에 장기간 약물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염증성 장 질환이나 식도염 등 다양한 관형기관 치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게재됐다. 2020년 같은 대학 연구진이 기리가미 기법을 이용해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 밑창을 개발하기도 했다. 기리가미 기법으로 만든 밑창은 사람이 서 있을 때는 평평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걸으면서 신발 바닥 형태가 변하면 입체 형태의 돌기가 생기면서 미끄러짐을 방지해준다.

2019년 서울대 공대는 기리가미 기법을 이용한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피부에 부착해 작동하는 전자소자인 전자피부는 피부로부터 생체 정보를 측정하거나, 열을 피부에 가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잘 늘어나지 않거나 형태가 변할 경우 전기적인 성질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있었다. 고승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투명전극 제작에 기리가미 공정을 적용해 피부 부위에 맞게 자유롭게 늘어나거나 휘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 연구 결과는 같은 해 나노 분야 국제학술지 '나노레터스'에 발표되며 주목받았다.

기리가미 기법으로 만든 소프트로봇 <사진출처=하버드대>


같은 해 하버드대 연구진은 기리가미 기법을 이용한 소프트 로봇 개발에 성공했다. 소프트 로봇이란 딱딱한 금속이 아닌 유연한 소재로 만든 로봇을 말한다. 연구진은 기리가미 기법으로 탄성소재로 만들어진 원통형 로봇 표면에 뱀의 비늘을 만들었다. 바람을 불어넣으면 비늘이 팽창해 지표면에 고정되고, 바람이 빠지면서 수축된 로봇이 이동하는 원리다. 이들은 이 로봇이 향후 바닷속 등 거친 지형 탐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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