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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조 실탄으로 넥슨·엔씨 주식 사들여…사우디 빈살만의 속내는 [황순민 기자의 더테크웨이브]

입력 2022/04/23 06:01
수정 2022/04/25 04:22
운용기금 620조 펀드 PIF
넥슨·엔씨 주식 잇달아 매입
글로벌 게임업계 큰손으로
[더테크웨이브] 요즘 게임업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Public Investment Fund·PIF)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는 넥슨, 엔씨소프트 등 한국 주요 게임사 보유 지분을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어 투자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600조원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PIF는 석유 에너지 사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게임,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 등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적 게임사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주 '더테크웨이브'에서는 PIF의 전방위적인 게임 사업 투자·진출 움직임과 전 세계 게임업계에 미칠 파장 등을 전망해본다.

PIF, 넥슨 지분 또 샀다…사실상 2대주주로

PIF가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넥슨 지분을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수차례 넥슨 지분을 매입해온 PIF는 이달 들어 넥슨 지분을 추가 매입했다. 이로써 PIF가 보유한 넥슨의 지분(일본 상장)은 종전 8.14%에서 9.14%까지 늘었다. 이달 13일 PIF는 일본공시정보시스템(EDINET) 변경 보고서를 통해 지난 3월 11일부터 4월 8일까지 16거래일에 걸쳐서 넥슨의 지분을 장내 거래를 통해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새롭게 취득한 주식은 총 906만7900주로 전체 지분의 1%에 해당한다. 업계에서는 추가 매입을 통해 PIF가 넥슨 지분을 취득하는 데 쓴 금액은 총 2476억6638만4000엔(약 2조42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로써 PIF의 넥슨 지분은 올해 초부터 7.09%→8.14%→9.14% 순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수개월에 걸친 PIF의 넥슨 주식 매입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PIF는 지난달 대리인을 통해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경영권 참여까지 염두에 둔 행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넥슨그룹의 지배구조 최상위에는 지주사인 NXC가 있다. NXC는 넥슨코리아를 100% 보유한 넥슨 일본법인의 지분 47.4%를 보유 중이다.

NXC의 지분은 고인이 된 김정주 창업자 일가가 100% 소유하고 있다. 정확한 지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장에 따르면 각 보유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 △김 창업자 67.49% △배우자인 유정현 감사 29.43% △계열사 와이즈키즈 1.72% △자녀 2명 각각 0.68%(총 1.36%) 순으로 파악된다.

IT업계는 넥슨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앞서 넥슨 일가는 2019년 넥슨의 지주사인 NXC 지분에 대한 공개 매각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마땅한 인수 대상자를 찾지 못해 매각이 불발됐다. 당시 기업가치는 약 10조원이었다.

매각을 결정할 경우에는 쉽지 않은 과정이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에 상장된 넥슨재팬의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으로 24조원을 웃돈다. 지분 48%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15조원에 달하는 매각가를 고려할 수 있다. 대형 인수·합병(M&A) 능력을 가진 세계적 펀드나 국내 대기업이 아니면 접근이 불가하다는 분석이다. PIF와 같은 투자업계 큰손들이 나설 가능성도 있다.

넥슨의 핵심 지식재산권(IP)인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이미지. <사진제공=넥슨>


전 세계 게임사 지분 빨아들이는 PIF

PIF는 올 들어 넥슨뿐 아니라 엔씨소프트와 주식도 장내에서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PIF는 엔씨소프트 주식 56만3566주를 약 2900억원에 추가 취득했다고 지난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했다. 이때도 PIF는 '단순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매수했다고 밝혔다. PIF는 지난달에도 엔씨소프트 지분 6.69%(146만8845주)를 취득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로써 PIF는 엔씨소프트 주식 203만2411주(지분율 9.26%)를 보유하게 돼 김택진 엔씨 대표(11.9%)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넷마블(8.9%)과 국민연금(8.4%) 지분율을 넘어선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PIF가 K게임의 미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현재까지는 '단순 투자이고 경영 참여가 아닌 주식 보유에 따른 기본 권리만 행사하겠다'고 밝혀 당장 경영권 위협 이슈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 귀추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PIF의 게임 회사 투자는 한국뿐이 아니다. PIF는 세계적 게임사인 미국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렉트로닉아츠(EA), 테이크 투 인터랙티브 등에도 투자했다. 지난해 일본 SNK의 최대주주에 올랐고, 캡콤(Capcom) 지분 5.05%를 3억3200만달러(약 4073억원)에 사들이는 등 한·미·일 게임사에 폭넓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PIF가 지난 1월 '사우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내걸고 출범시킨 '새비 게이밍 그룹(Savvy Gaming Group·SGG)' 홈페이지. 아직까지 '커밍순'이라는 문구만 남아있다. <새비 게이밍그룹 홈페이지 캡처>


사우디의 '게임굴기' 야심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이끄는 PIF는 지난 1월 '사우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내걸고 '새비 게이밍 그룹(Savvy Gaming Group·SGG)'을 출범시켰다. 석유 에너지 사업뿐 아니라 전 세계 게임산업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탈석유' 전략으로 우버·테슬라 등 첨단 기술 기업에 투자해왔다. 팬데믹 이후에는 엔터테인먼트와 게임(메타버스) 등을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빈살만 왕세자는 자신을 '비디오 게임과 함께 자란 첫 세대'라고 밝힐 만큼 게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PIF는 세계에서도 가장 큰 국부펀드 중 하나다. 펀드 운용 기금만 5000억달러(약 620조8000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게임업계 판도를 흔들고 있다. PIF는 e스포츠 플랫폼 페이스잇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e스포츠 기업인 ESL 게이밍을 인수해 SGG 산하로 합류시켰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아랍 세계 최대 경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게임 소비가 2030년까지 6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SGG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게임 및 e스포츠 그룹'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레저, 스포츠 등을 핵심 분야로 키우겠다는 PIF의 2021~2025년 전략에 따른 것이다. 브라이언 워드 SGG 최고경영자는 "SGG는 게임과 e스포츠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글로벌 게임 커뮤니티를 실질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PIF가 SGG를 중심으로 전 세계 게임 업체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실제로 PIF는 2020년 말부터 미국과 일본 게임사들의 지분을 꾸준히 사들였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지분 4.9%), 일렉트로닉아츠(EA·지분 2.6%), 테이크투(지분 3.5%) 등 세계 톱급 게임 회사에 투자했고 일본에서는 SNK·캡콤에 관심을 보였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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