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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할 수 있다면? '향기', 이제 눈으로 본다 [사이언스라운지]

입력 2022/05/14 06:01
수정 2022/05/14 06:22
[사이언스라운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향기'다. 꽃향기와 과일향 등 후각을 통해 전해지는 향기는 실제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다. 특히 후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신호인 냄새, 즉 향기를 가시화하게 된다면 어떨까.

국내 연구진이 향기를 가시화해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KAIST 기계공학과 유체 및 계면 연구실 김형수 교수와 생명과학과 생태학 연구실 김상규 교수 연구팀은 공동 융합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꽃향기가 나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가시화해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기초과학에서 향기를 분석하는 기존 방법은 특정 시간 동안 물질을 포집해 질량분석기 등을 통해 종류와 양을 측정한다. 하지만 KAIST 연구진은 직접적으로 냄새(향기)를 가시화하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연구진은 꽃향기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기 위해 광학기법을 이용하고 공기 중에 퍼지는 휘발성 화학물질의 상대굴절률 차이를 레이저-간섭계 기법으로 직접 가시화했다. 이를 통해 꽃향기가 어떻게 분비되고 있는지 향기 분비 패턴을 알아냈다. 관련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플랜트 사이언스(Frontiers in Plant Science)' 2022년 4월호에 실렸다.

[사진 제공 = KAIST]


꽃향기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화장품, 향수, 장식용 꽃 사업 등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식물이 여러 화분매개곤충과 교류하는 대표적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꽃의 생식 및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꽃향기 분비 주기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이번 기술은 꽃향기 합성과 분비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고 화분매개곤충과 상호작용을 통한 꽃향기 물질 진화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향기 물질 분비를 제어할 수 있다면 원예 및 농작물 생산 증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KAIST 기계공학과 김형수 교수는 "공기 중 증기나 가스를 가시화할 수 있는 기술이 더욱 발전될 수 있다면 위험 유해물질이 한정된 공간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직접 알 수 있어 산업용이나 군사용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규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번 기술을 활용해 향기 물질 분비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고 그 메커니즘을 밝혀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향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과거 한국식품연구원 연구진은 사과의 향이 맛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바 있다. 분석 결과 사과에서는 총 33개 향을 내는 물질이 발견됐는데 '에틸부타노에이트'와 '에틸2메틸부타노에이트' '헥실아세테이트' 등의 성분이 사과를 맛있게 느끼게 하는 핵심 물질로 조사됐다. 적절한 단맛과 신맛 수분까지 완벽한 구성을 갖춘 사과라고 하더라도 향기 물질을 제거하면 이를 먹는 사람들은 이것이 사과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과를 코에 가져다댔을 때 시중에서 파는 신선한 사과주스 향이 진하게 난다면 맛있는 사과일 가능성이 높다.

향수를 얼마나 많이 뿌리느냐에 따라 여성의 감정이 드러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거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정신의학·심리학과 연구진이 '관절염과 류머티즘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울증과 같은 증상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이로 인해 후각샘 기능이 저하된다. 기분이 우울한 여성들의 경우 냄새에 둔감해지면서 향수를 많이 뿌리게 된다. 연구진은 "좋은 향기를 맡으면 사람들이 더 많은 물건을 사고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며 "좋은 향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의 기분이 우울하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좋은 향기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효과도 갖고 있다. '감성과학회지'에 2015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옷에 넣은 라벤더향과 레몬향 냄새를 맡은 실험 참가자들은 '자율신경 밸런스 지수'가 하락하고 혈류량이 증가했다. 자율신경 밸런스 지수는 부교감신경계와 교감신경계의 비율을 의미한다. 사람이 깜짝 놀라거나 무서운 장면을 봤을 때, 혹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 라벤더향과 레몬향이 자율신경 밸러스 지수와 피부전도 수준을 낮춤으로써 힐링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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