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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후진국' '싸구려 일본'...개혁 몸부림, 과연 성공할수 있을까

입력 2022/06/04 06:01
수정 2022/06/05 05:37
[한중일 톺아보기-90]

지난달 16일 '디지털 일본 2022' 제언안을 디지털청에 제출하는 일본 자민당 의원들.[사진=자민당 홈페이지]


아시아 최대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하게도 '디지털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일본. 지난해 말 정부 차원의 디지털청 출범을 비롯해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전자 대기업 히타치 등 민관 모두에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디지털 개혁 항로는 여전히 밝지 않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 기업들이 디지털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정작 관련 인력이 부족해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최근 일본 기업들 중 53%는 디지털 전환(DX)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디지털 인재 부족'을 꼽기도 했죠. 이는 미국(27%)이나 독일 기업들(31%)보다 2배가량 높은 비율로 현재 일본 기업들의 DX 추진 관련 최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日기업들 IT 인재난 시달리면서도…'저임금' 홀대

일본에서 IT직종의 연봉은 전직종 평균을 하회한다. [그래픽=조보라]


후지소프트는 IT 컨설팅 사업 강화 등을 위해 올해 경력직과 신입 IT 인재를 대거 채용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입사 후 곧 퇴사하거나 내정된 상태에서 입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일본 IT 직종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은 약 10배로 다른 직종들에 비해 유독 높습니다. 일본의 이직·구인 정보 전문 사이트 'doda'에 따르면 IT 직종의 월별 신규 구인 배율은 2019년 3~5배였으나 지난해 12월엔 10배를 넘어섰습니다. 올해 3월에도 9.5배로 영업직(2.8배)과 판매직(0.4배)등 다른 직무 대비 현저히 높은 상태입니다. 코로나 19 등으로 모든 업종에서 디지털화가 더욱 요구되면서 IT 직종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겁니다.

닛케이는 IT 인재 부족으로 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일본 기업들이 정작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일본의 IT 직종 평균 연 수입은 438만엔(약 4200만원)으로 2019년 대비 4%가량 줄어들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머서(Mercer)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과 중국 IT 전문 직종의 경우 연봉 중앙값이 전체 직종 연봉의 중앙값을 8~10% 웃돌았습니다. 반면 일본에선 IT 전문 직종 연봉이 전체 직종의 중앙값을 2%가량 밑돌았죠.
'일본형 고용' 관행, IT 인재난의 숨은 요인

일본 제조업 간판 히타치는 최근 IT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연합뉴스]


닛케이는 일본 기업들이 IT 직종을 홀대하는 배경으로 임금이 시장 가치보다 연공서열에 따라 결정되는 소위 '일본형 고용'을 꼽았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일본 기업에서도 직무형 고용을 도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히타치는 다음달 본사 전 사원들을 대상으로 직무형 고용제를 적용할 예정이고, 후지쓰는 지난 4월 직무형 고용제 적용 대상을 전 직원의 9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죠.

직무형 고용이란 쉽게 말해 연공서열 대신 직무, 공헌도와 책임 범위에 따라 직책과 보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존 일본식 고용 형태는 여전히 일반적입니다. 게이단렌(經團連)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 중 약 65%가 IT 등 전문인력에게 일반 사원들과 동일한 임금체계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IT 전문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적으로 기본지식 습득을 위한 강좌의 경우 보통 3~6개월 코스에 수업료만 30만~60만엔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비용을 들여도 그에 걸맞은 임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보니 IT 분야를 전공하려는 학생 수도 줄어들면서 인력난이 더 심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입니다.

통계상 IT 직종은 전문성으로 인해 타 직종에서 이직해 오는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닛케이는 직무형 고용제 확대와 임금제도에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일본의 디지털 인재 부족 현상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장기침체 요인 '일본형 고용'…직무형 고용 확대가 돌파구?

최근 도요타 자동차 입사식에서 사가를 제창하는 일본 신입사원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일본형 고용을 30년 넘게 지속 중인 일본의 임금 정체와 경기 침체를 부른 원인 중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대장성(재무성 전신) 관료 출신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도 그중 한 사람 입니다. 노구치 교수는 "고용·급여체계가 경직적이고 기술 또는 사회 변화에 기민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일본 경제 침체의 큰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변화가 큰 시대에는 기업도, 근로자도 새 근무 방식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며 대안으로 직무형 고용제 확산을 꼽습니다. 특히 IT와 같은 전문기술 직무에 있어서는 직무형 고용 형태가 더욱 바람직하다는 게 그의 견해입니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 사회의 특성상 이 같은 변화를 주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도 일부가 아닌 기업 전체가 함께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직무형 고용은 근로자가 한 기업이 아닌 여러 기업을 옮겨다닐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순환식 근무로 상징되는 일본형 고용은 전후 일본 경제의 급성장을 뒷받침하는 표준적 제도로 기능했습니다. 중화학 공업의 진전과 함께 근로자를 한 기업에 정착시켜 훈련시키고 직무를 익히게 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일본의 독특한 고용 형태였죠. 일본의 노조가 직업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 형태를 띠는 것도 이때의 영향입니다.

고도성장기 일본이 선진국들을 따라잡는 과정에 있었을 때에는 이 메커니즘이 잘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선진 시장으로서 크고 작은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변화에 둔감하고 전문성을 살리기 어려운 일본식 고용제도가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도 종신 고용 붕괴 단어가 나온 지 오래라고 하나, 종업원이 1000명 이상인 대기업들, 특히 제조업 계열에서 일본형 고용 관행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종신 고용의 보호를 받는 나이 많은 직원과 정사원으로 입사하는 직원이 비율상 줄어들었을 뿐이죠. 일본의 이 같은 고용 관행은 이직률이 서구의 절반 이하인 점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시험대 오르는 日 '새로운 자본주의'…한국도 주시해야

지난해말 자민당 재정정책검토본부회의에서 말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사진=교도·연합뉴스]


지난달 일본 자민당 재정건전화추진본부 회의는 평소보다 소란스러웠습니다. 회의 제언안에 있던 "최근 많은 정책이 실시됐지만 결과적으로 경제성장률은 선진국 최저 수준" "초임이 30년 전과 다르지 않아 국제적으로 '싸구려 일본(安い日本)'이 되고 있다"는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이에 격분해 "아베노믹스를 비판 하는 거냐" 며 누가 해당 문구를 넣었는지 추궁해 소동이 빚어졌죠. 아베파의 강력 반발에 논란이 된 문구들은 결국 삭제됐습니다.

아베노믹스로부터 궤도 수정을 시사해온 기시다 내각은 지난 1일 간판 정책으로 내세워 온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 계획안을 공표했습니다. 요점은 임금 인상 등 사람에 대한 투자로 소비를 활성화해 수요 부족→디플레이션→임금 정체→수요 부족이라는 저성장 악순환에 빠져 있는 일본 경제를 건져내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모든 근로자들의 평균 최저임금을 1000엔(약 1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죠.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일방적 임금 인상은 기업 수익성을 떨어뜨리기만 할 것이란 회의론에는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금을 높여 수요 부족을 메우려는 이 같은 전략이 벌써부터 암초를 만난 모양새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일본도 수십 년간 그대로였던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임금이 같이 뛰지 않아 가계 부담만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 엔저는 일본 수출 기업들의 수익을 높여 무역 흑자를 가져다주었지만, 리먼 사태 이후 이들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대거 이동시킨 탓에 예전과 같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엔저가 수출에 큰 도움은 안 되고 물가만 밀어올리는 소위 '나쁜 엔저' 현상도 나타나고 있죠.

일본 정부는 '나쁜 엔저'를 막아야 하나 쉽지 않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60%에 달하는 부채 탓에 금리를 1%만 올려도 이자 부담만 40조원에 육박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은행은 미국 연준의 잇단 금리 인상에도 금융 완화를 고수하는 이유로 "엔저가 전체적으로 일본 경제에 플러스"이고 "경기 활성화 목표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금리 지속으로 미국과의 금리 차가 더 이상 벌어질 경우 자본과 인재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기시다 내각은 수요 부족을 임금 주도 성장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나쁜 엔저'로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지난 2일 '2022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개회사 및 기조연설중인 이창용 한은 총재. [사진=연합뉴스]


물론 현재 한국은 일본을 보며 안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일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후 선진국을 위시해 한국 등 인구 문제에 직면한 일부 신흥국에서 장기 저성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전 세계에서 최저인 출산율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릴 최대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죠. 전문가들은 만약 한국이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게 된다면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점이 많지만 경제구조 및 사회적으로 닮은 구석도 많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장기 저성장이라는 독특한 상황과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경제모델을 앞서 경험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일본이 저지른 실수들을 반면교사 삼아 시행착오를 줄이고 올바른 방향을 도출해 낸다면, 일본이 빠진 장기 저성장의 늪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토요일 연재되는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들을 살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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