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예술가들

최초입력 2021.11.24 10:32:51
최종수정 2021.11.24 10:47:26

국립 춘천 박물관에서



나는 어른이 싫다. 재미가 없잖아. 중년의 나이에 할 소리는 아니지만 어른 노릇 참 힘들다. 기뻐도 함박 웃음 깔깔 못하고 입꼬리 씰룩 미소로, 슬퍼도 펑펑 눈물 안되고 이를 악 물어야하고, 분해도 괜찮은 척 에헴에헴. 그러다보니 무표정일수록 한결같은 사람이야! 소릴 들으니 사람들은 자꾸 가면을 쓰는 것 같다. 기뻐도 슬퍼도 안 괜찮아도 똑같은 표정. 감정도 자꾸만 편평해진다. 데면데면해진다.
개그를 보고도 못 웃고 (도대체, 왜 웃지?) 로맨스를 보고도 안 설레고 (살아봐라, 사랑따위!) 세상 심드렁한 얼굴로 늙.어.간.다.

나는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푹 빠져버리게 된다. 같이 키득거리게 돼. 한창 아이를 키울 때에는 그러지 못했다. 천재인 줄 착각하느라, 영재반 욕심내느라 자주 성냈고 눈 부릅떴다. 지금 깊이 뉘우치고 있지만 돌이킬 수 없다. 아이는 너무 빨리 자라고 어른은 서둘러 늙으니까. 그렇게 멀어져가다 예술 한복판에서 아이들을 만난 것이다. 어린이 예술 감성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그림을 보고 내어놓는 이야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거침없다. 솔직하다. 꾸밈없는 그 이야기가 예술의 본질과 닿아있어서 깜짝 깜짝 놀란다. 어른들이 잔뜩 부려놓은 거창한 의미, 개념, 철학을 단박에 거둬낸다. 그래, 예술 이렇게 보이는 그대로 얘기해도 되는거잖아. 이렇게 쉽고 재밌는거잖아. 그거잖아.

아이들과 화가가 함께하는 전시가 시작됐다. 국립 춘천 박물관에서 열리는 '어린이 & 화가, 행복한 그림전'이다. 한국 미술 재단의 학교 안 미술관 만들기 사업이 본격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고 있다. 학교 안에 작은 미술관을 만들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예술 교육도 작가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찾아가는 예술가들. 아이들은 수학, 영어를 잠시 잊고 신나게 그렸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표현했다. 전시 된 그림들을 보니 아이들의 모습이 한 명 한 명 보이는 것 같아.

아빠와 나란히 기대 보름달 구경한 적 있구나. 자전거 타고 집에 가다가 노을이 너무 예뻐서 잠시 멈췄니. 축구 하다가 꽈당 넘어진 적도 있었네. 우주선 타고 달나라도 다녀온거니. BTS도 함께 다녀왔구나. 그림은 아이들의 마음 그 자체다. 열살 인생 이야기가 고스란하다. 어리고 철없다고 생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들은 훨씬 더 빨리 감각하고 알아채고 받아들이거든. 그래서 정말 좋은 교육, 진짜 좋은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에는 강원도 20여개 초등학교 무려 818점의 어린이 작품이 화가 선생님 작품과 나란히 걸렸다. 화려한 전시장이 아니다. 근사한 조명도 아니고. 그저 한 학교 한 학교 모둠별로 정성스럽게 전시되어 있는데, 보는 내내 마음 속에 깊고 따뜻한 것이 차올랐다. 때이른 추위 두렵지 않은 난로같은 마음, 차가운 바람 속 지치지 않을 햇살같은 희망. 아이들 그림은 그렇게 스스로 빛났다. 하나같이 뜨겁게 반짝거렸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 더, 예술이 필요하다. 반드시 그렇다.



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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