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행복 너머 사랑받는 기업 만들자!

최초입력 2021.11.25 15:41:11
최종수정 2021.11.26 08:12:27


첫 직장생활은 1995년이었다. 1987년에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아진 시간을 책이나 들춰보며 시간을 때우던 그때는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을 들어가는 데 목표를 두다보니 그 다음 목표를 정하지 못했달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료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고, 그 시절 나를 이끌어주는 인생의 멘토가 있었으면 더 적극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살아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남아있다. 

촌놈이 대구로 나와 누나와 자취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나마 집과 학교를 오가는 삶에서 숨통을 틔워준 건 축구와 책이었다. 1학년 때 체육 시간이 1주일에 3시간이나 되었는데, 가슴이 터지도록 흙먼지 나는 운동장을 뛰어다닌 것도 열정을 분출할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그렇게 축구공 하나에, 골대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나마 1학년 때는 수업만 끝나면 하교를 했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 밤 8시까지, 3학년이 되면서 10시까지 자율학습이란 명목으로 자습을 했으니까. 집에 돌아와서는 라디오 가요프로그램을 듣거나, 근처에 있는 친구하고 배드민턴을 치거나 야구 캐치볼을 하기도 했다. 반 애들끼리 조기축구회를 만들어 일요일에는 근처에 있는, 나중에 모교가 된 경북대 대운동장에서 뛰어다녔다. 아침 8시부터 12시가 다 되도록 아침밥도 먹지 않고. 운동장은 왜 그렇게 넓은지, 별로 먹은 것도 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그날 하루는 허기와 탈진으로 하루 종일 끙끙 앓기도 했다. 

심심한 일상을 오락실에 가서 제비우스며 갤러그를 하기도 하고, 일요일 저녁부터 찾아오는 월요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 친구의 추천으로 심훈의 <상록수>를 완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계몽소설에 그렇게 감동을 받아 형식 같은 지식인, 구도자의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출판사 영업사원의 꾐에 빠져 산 한국위인전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책을 완독했을 때의 쾌감이란. 마지막 장을 넘길 때의 그 뿌듯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후 일요일마다 동네 서점에 죽치고 앉아 삼중당문고를 보기 시작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만난 것도 그 때였다. 세로쓰기로 된 갈색의 문고판인데, <무기여 잘 있거라>를 보면서는 왜 그렇게 애절하던지. 아마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한 건조체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다. 기자 출신이다 보니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에다 참전의 경험이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한 고등학생을 니힐리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듯하다. 그의 단편집까지 죄다 읽었으니까. 스탕달의 <적과 흑>, 에밀리 브론테의 <제인 에어>,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본 것도 그즈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안병욱, 김동길, 김형석, 유안진의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은 그런 아포리즘의 책들이 인기였다. 이어령의 소설 <둥지 잃은 날개>, 이외수의 책들도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멘토 이문열을 만나게 된다. <사람의 아들>로부터 시작해 자전적 소설 <젊은날의 초상>, <필론의 돼지> 같은 단편집, <평역 삼국지> <변경> <영웅시대>까지 그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 

결국, <오디세이아 서울>부터 그 시절 정신적 지주를 버리게 된다. 이후 한국 단편소설 최고의 걸작의 하나로 꼽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를 거의 그대로 표절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렇게 큰 실망을 하지도 않았다. 80년대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교양을 준, 한 시대의 작가가 그렇게 오만한 보수주의자이자 스스로 권력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큰 실망을 했다. 

하지만, 젊은 날 정신적 스승으로의 역할은 부인하지 않는다. <영웅시대> 속 헌책방 책사부는 강렬하게 남아 나중에 동네서점 주인을 해야겠다는 꿈을 꾸게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과연 내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더구나 법대를 다니면서도 법조계에 가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느냐는 별개로 하고, 변하지 않는 조직생활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는 일은 체질이 아니었다. 그 때는 말 그대로 룸펜이 되고 싶었다. 먹물 백수건달! 

1996년에 대기업 제조업체로 직장을 옮기면서 기업문화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사보를 만들고, 매년 강성노조와 임단협을 하는 과정을 보면서 사무직 노동자, 특히 홍보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경영자와 생산직 노동자 사이에 낀 존재인 사무직 노동자, 그중에서 회사 전체의 경영방침과 기업문화를 어떻게 융합시켜 가야 할까? 

2005년부터 3년 정도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론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해보자’였다. 대학 때 꿈이었던 동네서점 책사부의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인터넷책뉴스 사이트에서 책 시민기자를 하면서 미디어다음에 매주 ‘책vs책’ 칼럼을 기고했고, EBS 라디오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기회도 얻었다. 

매주 한번씩 10분 정도의 방송 분량이지만, 방송 원고를 다듬고 소개하는 6개월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다른 라디오 방송에서도 책 소개를 하게 되었다. 이후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말하는 rws의 개념을 브랜딩하게 되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다 보면, 좀더 일찍 책을 통해 미래의 비전을 세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찾도록 하고, 그 구체적인 수단이 되는 글쓰기와 스피치 실력을 키운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독서와 글쓰기, 스피치 코치, 더 나아가 삶을 설계하는 비전코치, 라이프코치의 역할을 하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소극적인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하고, 또 그러자면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행복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일을 할 수 없을까? 스스로 찾아서 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해서이고,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사회적 기업이 붐인 것도 높은 급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안의 이상과 꿈, 의미 있는 하고 싶은 사람들의 선한 의지 때문이 아닐까? 

기업이 효율과 이익, 실적만 추구할 게 아니라 고객과 협력사, 직원,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늘려야 한다. 깨어있는 자본주의, 사랑받는 기업이 실적도, 영속성도 보장할 수 있다. 자주 유혹에 빠진다. 좀더 빨리 탄탄한 매출 구조와 수익 구조를 만들고 싶은 마음과 멀리 길게 보면서 평생의 업으로 대안의 학습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다. 그건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작은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는 갈등이다.  

회사가 동아리가 아닌 이상 수익을 남겨야 한다. 그 수익을 재투자해서 더 많은 사업들로 확장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매달 지출해야 하는 비용과 인건비, 투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그 비즈니스에 한계가 있거나 구성원들이 적절하게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실험을 지난 13년간 해왔다. 내년부터는 좀더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쳐갈 계획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인 인성 문제와 창의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감성 교육을 전국적으로 확산, 전파하는 게 앞으로의 미션(mission)이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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