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반전, 숭학당 키즈

최초입력 2021.12.03 09:13:16
최종수정 2021.12.03 13:58:51

출처 : 사진 작가 백승휴



2020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점철됐다. 2월 설날을 전후해 확산 기미를 보이던 팬데믹 상황은 봄부터 개학을 연기하다 결국에는 학교 등교를 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전후 70년 이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은 모든 사회 시스템을 정지시켰다.

학당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면해서 토론하는 모임은 물론이고, 학당의 주요한 수입원이었던 북콘서트 행사를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팬데믹 초기, 학당에서 진행하는 대면 독서모임은 연기를 거듭하다 결국 취소하게 되었고, 도서관과 학교는 다들 손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법. 대면 모임은 비대면 줌(zoom) 모임으로 전환되었고, 도서관과 학교는 비대면의 온라인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학당은 상시적으로 100개 정도의 모임과 강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30% 정도는 대면 모임이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모임과 강좌가 비대면 온라인 모임으로 전환되었다.

반전은 여기에서 일어났다. 초중등 학생들이 등교를 할 수 없게 되자, 학부모들이 대체교육 프로그램을 찾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학당의 독서토론과 글쓰기 모임이었다. 특히, 글쓰기 모임은 애초에 12명 정도로 시작해 60명, 120명까지 급속하게 늘어났다. 청소년 모임까지 포함하면 200명을 넘어섰다.

비결은 모임 진행자의 애정 가득한 댓글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짧게라도 한 줄 한 줄 쓴 글에 대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린 정성스런 피드백은 ‘글쓰기는 재미없다’는 아이들의 편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빨간펜의 글쓰기 첨삭이 없다는 점이다. 자유롭게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놓는 게 먼저이지,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는지 코칭하는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엄마, 아빠, 친구들,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했던 생각을 표현하는 놀이였지, 학습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 엄마의 강권으로 끌려오게 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글쓰기를 하면 게임시간을 늘려주겠다는 협상에 넘어가 참여한 경우가 제일 많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사주거나 여행을 가는 조건으로 시작한 아이들도 있었다.

자신과 상의도 없이 등록했다고 화를 내던 아이들은 억지로 시작하게 된 속상한 마음이나 지겨운 독후감 같은 걸 쓰라고 하면 어쩌나 두려워했던 마음들을 담아내는 글을 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글쓰기 모임의 운영자가 정한 원칙 때문이었다.

첫째,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매일 다섯 줄을 쓰는 미션이 주어지는데, 고쳐주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배워갔다. 글의 밀도가 달라지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몇 달이 지나자 한 줄씩 쓰던 문장을 문단으로 나눠서 쓰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어떤 제목을 달면 독자의 시선을 끄는지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둘째,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을 것이다. 부모의 권위에 눌리고, 해야 할 공부에 시달리고, 슬픈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매일 주어진 글감과 주제가 있지만, 얼마든지 자유로운 글쓰기를 허용한 것이다.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아이들은 화내는 엄마를 고치고 싶다고 말했고, 언니나 동생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끝없이 이야기하고, 게임을 못 하게 하는 부모님에 대해 거친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혼나서 눈물을 훔치고 복수를 꿈꾼다고 고백하는 아이도 있었다. 마음이 꼭꼭 닫혀서 삐걱거리고 있고, 조각난 자기 인생을 수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아픈 사연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공감과 애정, 칭찬을 쏟아붓는다.

아이들이 올린 글마다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서 좋은 점을 칭찬했다. 글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그 마음에 공감하고, 기쁜 소식에는 오롯이 축하의 마음을 담았다. 아이들은 자기의 속도대로 발전하고 있었다. 빠른 아이도 있었지만, 느린 아이도 많았다. 친구를 6개월 간이나 설득해 데려온 아이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글쓰기라는 아이도 생겼다.

어떤 아이들은 1년 넘게 꾸준히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있다. 글쓰기를 평생 하고 싶다는 아이도 있고, 글쓰기가 없다면 우울해져 살지 못할 거라고 하는 친구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의 한 아이는 글을 쓸 때는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다. 결과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이들의 심각한 글을 읽으면서 모임 운영자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도 하고,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다독였다.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면서 공감해 주던 어느 날부터 아이들의 글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필요한 만큼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쏟아낸 아이들은 행복한 감정을 노래 가사처럼 풀어내기 시작했다. 불안함과 공포, 슬픔과 분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웃음과 즐거움, 자신감과 행복이 들어찼다.

온라인 모임은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섰다. 해외 주재원이나 외교관의 자녀들은 모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찾아들었다. 필리핀, 두바이, 싱가포르, 미국 등에서 여러 친구들이 함께 참여했다. 펜실베니아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오누이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외국에 살다 국내에 들어온 학생들도 있다. 모국어에 대한 적응을 하는 데에 매일 글쓰기보다 더 좋은 방법도 없으니까. 더구나 글쓰기 친구들이 있으니까 글쓰기가 외로운 분투가 아니고,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학당에서 마련한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치유의 공간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글쓰기 모임이야말로 아이들의 해방구다. 어린 숭학당 키드들이 앞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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