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나이가 있나요

최초입력 2022.05.06 15:23:38
최종수정 2022.05.09 09:53:03


초록아이(eye)라고 불러주셨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스스럼없이 곁을 내주는 사람이었다, 김자숙 선생님은. 평생을 연극 배우로 살아온 분으로 자신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독특하고 개성 넘쳤다. 늘 검은 옷을 즐겨입고 튀는 걸 싫어하는 나와는 어쩌면 정반대 같았다. 그런데도 뭐 하나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걸 거부하는 그녀가 너무 재밌고 편했다.
모자에서 신발까지, 그녀의 모든 것은 기성품이 하나도 없다. 레디메이드가 아닌 아우라가 넘쳤다. 왜? 그녀가 전부 자기만의 스타일로 커스터마이징 해버리므로. 심지어 마스크에도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정말 신기한 사람, 천상 타고난 예술가였다.

예술가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돌을 깎아 조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으로 보는 사람이며 마음에 채색하는 사람이며 마음을 깎는 사람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이고 마음을 알아채는 사람이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이지. 그러므로 예술은 수준을 논할 수 없다. 그것이 어떤 예술이든 그 순간 마음을 쏟아부은 것이고 그 마음 귀하디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환기의 푸른 전면점화가 현재 가장 비싼 작품이어서 귀한 것이 아니라, 그 점 하나하나에 쏟아부었을 마음, 외로움, 그리움, 수많은 감정을 느끼기에 더욱 귀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예술은 한 사람의 삶의 집적이라 생각한다. 선 하나를 그렸어도, 단 5분만에 그린 것이라 해도, 그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걸고 그린 것이란 이야기. 그러므로 존중받지 못할 예술은 없다. 게다가 김자숙 선생님은 탁월하기 그지없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직 나만의 생을 사는 사람이니까. 누군들 다 나만의 생을 살지 않겠냐마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며 개성을 잃어버렸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잊었다. 그러면서도 몰개성의 평범한 게 선이라 여겼고, 평범하지 않은 튀는 개성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호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남다른 그녀가 그림을 그린다. 나이 육십이 넘어 처음 캔버스를 마주하고 물감을 섞고 붓을 들고서. 아, 처음은 아니지. 여태 그녀의 멋들어진 모자, 폭이 넓은 치마, 코가 동그란 가죽 신발, 커다란 에코백에도 그녀만의 예술이 들어있었지. 평생토록 나, 김자숙이예요, 나는 나만의 삶을 살죠! 를 온몸으로 외치고 살아온 사람인거다.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 멋지고 근사했다. 모두가 다수속에 숨는데 그녀는 거침없이 앞에 나서고 표현하고 드러낸다. 때로 금홍이가 되기도 하고, 나혜석이 되기도 하며, 까미유 클로델이 되기도 하지. 그녀의 즉흥극은 모두 여자들의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며 자신의 이야기다.

그녀가 나를 그려주었다. 짧은 머리, 반달눈, 마스크로 가렸지만 웃는 입. 무엇보다 내 마음마저 그려준 것 같다.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그렸으니 당연히 내 마음이 그려진 것이겠지. 누가 나를 그려준 일은 처음이다. 그림처럼 사랑스럽진 않지만, 그림처럼 살게 될 것 같아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좋다고 신나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몇번이고 묻는다.

ㅡ진짜 괜찮아요? 진짜 좋아요?

아마도 느닷없이 연극 배우가 그림을 그린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ㅡ예술에 전공이 어딨고 주류가 어딨어요.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즐길 자유가 있죠. 내가 좋아서 하는 예술이 보는 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다 여긴다. 인생 전체를 예술로 보고, 하루를 그리고 칠하고 만들고 한해한해 직조하고 창작해가는, 우리 모두 생의 예술가가 아닌가 말이지.

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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