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삽과 분갈이

최초입력 2022.05.16 15:02:47
최종수정 2022.05.17 09:29:36

출처 : 직접 촬영



봄 나들이 갔다가 길가에 늘어서 있는 화원에 사람들과 차들이 늘어서 있었어요. 활짝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옮겨 심기기를 기다리는 작은 화분들이 많았어요. 오늘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나도 모르게 화원에 들러 꽃 색깔이 예쁜 화분 2개를 샀습니다. 가격도 개당 8천원이니 너무 헐하다 싶습니다. 한 끼의 식사값 정도니까요. 그 꽃과 화분을 보는 내내 즐겁고 아름다움을 느낄 테니까요.

일단 화분을 사오기는 했는데, 이를 어쩌나 망설이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종삽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3년 전에 시모임에 참여하시던 분 중에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너무 샤이(쑥스)하셨어요. 그런데, 이분이 6회차의 마지막 시간에 참석자 모두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셨어요. 그것도 모두 같은 선물이 아니라 각자 다른 걸로 사오셨어요.

남자분이셨는데, 어디서 그런 감성을 가지고 계신건가 감탄했습니다.
선물을 미리 준비해오는 것도 그렇지만, 각자마다 다른 선물을 골랐을 그의 마음과 정성, 투자했을 시간을 생각하니 와락 고마운 감정이 쏟아졌달까요. 그런 감성이니 남자분이 이런 시모임에 신청하셨겠다 싶었습니다. 저야 운영진의 입장에서 참여인 셈이었구요.

아무튼 그때 제가 받은 선물이 바로 모종삽이었어요. 그 선물이 부담스럽지 않은 건 비싼 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시 수업 시간에 '어떤 노후를 살고 싶으냐'는 얘기가 나왔는데, "작은 텃밭이나 화단을 가꾸고 싶어요. 나중에 전원주택이라도 살면 말이죠", 그런 말을 했던 걸 듣고, 저에게 선물한 게 모종삽이었어요.

화분을 보니, 그 작은 모종삽이 생각났습니다. 작년 11월에 이사 온 집은 단독주택이라 분갈이를 할 화분들은 많았습니다. 보통은 처음의 마음처럼 화분의 식물들을 잘 키워내지 못하니까요. 정말이지 1층 화단을 살펴보니, 화분들 몇 개가 여기저기 보입니다. 적당한 걸 하나 골랐고, 뒤란 같은 집 뒤에도 빈 화분들이 여러 개 보였습니다. 그중에서 또 하나를 골랐습니다. 크기가 적당한데, 살짝 금이 가 있었죠. 못쓸 정도는 아니구요.

이사온 지 6개월 만에 1층의 화단이며, 뒤란을 제대로 살펴본 거 같습니다. 이사오면서 1층에는 세들어 사는 두 청년이 있는데, 집이 낡아서 그런지 젊은 남자들이 그렇듯 물건을 제대로 치우고 살 지 않아서 그런지 1층 마당이 좀 지저분했습니다. 그렇다고 1층을 ‘합법적으로’ 점유하고 이용하는 그들에게 물건들을 정리해줄 것을 요구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니, 나라도 1층 마당을 정리하거나 하는 걸 하기도 권한을 넘는 일같기도 했습니다. 우선은 내 짐을 정리하고 살기도 바쁘니까요.

화단에서 3년 전에 선물 받은 꽃삽으로 분갈이를 하다가 화단 주변에 보이는 지저분한 것들을 대충 치웠습니다. 1층 사람들의 점유권과 이용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리하는 건 그들이 알아채지도 못하겠지만, 알아챈다고 해도 그렇게 화를 내거나 불편해 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청소가 그렇듯, 뭘 하나를 치우다 보면 옆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치우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청소가 계속 이어져서 뜻하지 않게 대청소가 되는 경험이 있으실 거에요. 저는 오늘 그렇게 되는 불상사는 오지 않도록 참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해야 해서 꽃화분 분갈이와 마당 청소는 대충 끝내야 했습니다. 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두 식물을 적당한 자리에 이사를 시키고 보니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다들 식물을 키우는 이유는 이런 마음 때문일까요? 내면에 가득한 행복한 기운. 이런 이유때문에 헤르만 헤세도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쓰셨나 봅니다.

아무튼 모종삽이 없었더라면, 근처 철물점이나 여러 잡동사니를 파는 알뜰가게에 가서 사와야 분갈이 작업을 마칠 수 있었을 거에요. 다시금 시 모임에 참석한 그분의 유용한 선물에 감탄했습니다. 기억이 났으니, 카톡방에서 소환이라도 해서 그 시절의 일들을 떠올려볼까요? 아니죠. 그렇게 하면 민망해 할 지도 모르니까요. 그저 나만의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좋을 듯해요.

단독주택이 좋은 건 마당과, 넓은 베란다가 있다는 걸까요. 화분을 실내에서만 키우다 보면, 햇볕이 잘 드는 외부 베란다에서는 얼마나 잘 클까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또 반려동물보다는 꽃이나 식물을 키우는 게 훨씬 쉬운데도 이 식물조차 자주 죽이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날 때 물만 줘도 잘 크는 고무나무를 좋아합니다. 대나무를 수경 재배하는 것도 잼나는데, 모두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초록빛 선물을 주니까요.

이 고무나무를 집에 들어온 지는 3년쯤 됐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잎이 하나씩 돋아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자고 나면 몽글몽글한 망울이 어느새 잎으로 펴져 언제 망울져 있었던가 싶습니다. 물만 줬는데도 이렇게 잘 크면서 매일 초록빛 선물을 준다니 정말이지 '아낌 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나무를 한 번 키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동물과는 또다른 식물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출처 : 직접 촬영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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