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펜트하우스`와 막장경제학

최초입력 2021.01.07 10:39:21
최종수정 2021.01.11 11:42:06
마지막 회 시청률 28.8%(닐슨코리아 조사)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2021년 1월 5일 SBS TV의 ‘펜트하우스’가 시즌 1을 마무리 지었다. ‘막장 중의 막장’이라는 독보적인 타이틀을 얻으며 불륜, 살인, 납치, 부정입학, 학교폭력, 출생의 비밀 등 인간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막장을 한 그릇에 담아 패키지화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사진 - SBS제공



그동안 시청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다양한 종류의 막장 작품들은 존재해 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특정 분야의 막장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했을 뿐, 막장을 종합선물세트로 구성하지는 못했었다. ‘펜트하우스’에서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막장의 사례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많은 논란 속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행위를 일컫는 단어인 ‘막장’은 보통 일반인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이 증명하고 있듯이 일반인들은 이 막장의 내용에 열광하며 그 스토리에 더욱 깊이 빠져든다. 그러나 시청하던 작품이 끝나고 나면 ‘이런 막장드라마가 어디 있느냐’며 정상적 사고로 돌아와 작품의 소재를 비난하곤 한다. ‘펜트하우스’ 시즌 1이 종영한 직후에 시청자들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린 드라마 소재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댓글을 남긴 그들의 대부분은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하던 일반인이지 문화 평론가는 아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이성적 시각에서 부도덕한 작품 소재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본인 역시도 몰입하며 막장드라마를 시청했다는 그 사실만큼은 숨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막장드라마의 소재는 부도덕함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부도덕의 출발은 사회적 관점에서 불공정함을 완성시킨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저서를 발간하면서 인간은 처음부터 불평등한 상태로 출발선에 서게 된다고 말한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JTBC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다룬 소득수준과 성적에 대한 상관관계처럼 실제 사회에서도 가계소득과 수능 점수 간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다.

대중들은 이런 불공정한 현실이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더 많은 사람에게 비치는데 대해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그런 부조리에 대해 대중들이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보며 나름 정직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작은 위로를 받으려 한다. 불공정한 사회를 탓하면서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정직하게 살아간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주된 소재가 되었던 부분은 ‘서울대 입학’을 위해 불공정한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이었다. ‘펜트하우스’에서도 역시 ‘서울대’가 자주 언급되며 입시비리에 대한 뚜렷한 목적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만으로 성공한 인생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의 풍토 자체가 출신 학교만으로 계층을 만들고 그 밖의 능력들을 제한하면서 다른 불공정을 만들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막장드라마의 주된 소재가 되는 이 부분에 대해 감춰진 이야기들을 일반인들은 알고 싶어 하고, 비난하고 싶어 한다. 비난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하기에 이런 막장드라마는 일종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막장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나와는 다른 계층에 대한 학습을 하고 있다.

영화건 드라마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각자의 견해가 다를 수 있기에 특정 작품에 대해 막장이다 아니다를 단정 짓거나 언급하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펜트하우스’는 아예 대 놓고 막장 드라마였으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막장계의 선두주자로 단숨에 올라섰다. 소재에 대한 숱한 논란 속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체험해 보고 싶어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며 몰입하면 궁금증이 해소되고 간접적으로나마 다른 계층의 삶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여태껏 대한민국에서 막장드라마가 강세를 보이며 살아남고 있는 이유다.

장기민 우버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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