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 당주의 무모한 도전

최초입력 2021.12.10 09:40:53
최종수정 2021.12.10 13:41:37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산골에서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관찰할 수는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일상은 늘 자연 다큐멘터리 급이었다. 나무에서 잎을 틔우는 건 물론이고, 망울이 져 꽃이 피고, 떨어지고, 열매가 열리는 그 자연의 조화가 그때는 그렇게 드라마틱한 지 몰랐다. 나이 들고 보니 늘 정지해 있는 것 같은 자연보다 더 역동적인 게 없었다.


영락없는 컨추리 보이(country boy)인데, 의외로 도시의 세련미를 좋아하기도 한다. 2남1녀의 막내라 그런지 솔직담백 소탈한데, 또 구질구질한 걸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다. 성격도 엄청 급한 편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데,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지금은 많이 제어가 되지만, 한번 몰입하면 무서울 정도로 불태우기도 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런데, 의외로 빨간 능금 같은 욕망을 내면에 가지고 있었다. 옷을 고를 때 보면 과감한 원색을 즐기는 편이다. 사람들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스스로 그런 이중성을 즐긴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주니까. 식물성인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은 면도 있다. 직진몰입형이다. 영화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

이런 성향은 학당을 운영하는 리더십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통상 어떤 단체나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주도적이고 나서기를 좋아하고 권력지향적인 사람이 맡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수동적이고 물러나 있기를 좋아하고 권한위임형에 가깝다.

특별히 눈에 띄지를 않으니, 학당에 온 회원들이 궁금해 한다. 심지어 학당의 리더, 즉 학당의 강사나 모임 운영을 하는 분들조차 자주 나의 안부가 궁금해서 학당의 일꾼 ‘김차장’을 통해 묻곤 한다. 특히, 2년간의 침잠 기간에는 더 심했다.

대체로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표의 개인적인 문제의식과 그걸 해결하려는 강력한 동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의 경우는 식물성 리더십이다.

스타트업 교육회사가 대부분 대표가 강연가 기질이 있어 주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기획자 기질이 있어 전면에 나서지 않는 편이다. 직접 필드에서 뛰기보다는 사무실에서 방향성에 대해 더 고민하는 편이다. 나를 지칭하는 애칭 ‘당주’는 무리의 주인(黨主)이란 뜻이 아니라 집의 기둥(堂柱)이라는 의미다.

또 하나의 애칭은 ‘엇박 당주’다. 뒷북 치는 것도 잘 하는 약간 허당끼가 있는 캐릭터다. 평소에는 조금 어눌하고 느린 ‘엄근진’(엄숙 근엄 진지)으로도 통하지만, 카톡으로 대화할 때는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를 놀라게 한다. 누군가 ‘난사’ 수준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말과 글, 대면과 비대면의 엄청난 격차. 평소의 샤이(쑥스)한 성격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기 캐릭터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잡을 수 없어 힘들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업무 추진력은 사막의 사자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설렁설렁 놀다가 중요한 국면에서는 먹이를 낚아채는 사자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사업 초기 함께 강좌를 기획하던 한 저자분은 나의 업무 스피드를 보고, 자신도 엄청 빠르다고 자부하는데 나의 속도를 보더니, 거의 ‘살인적인 스피드’라고 경악하기도 했다. 물론, 상대방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앞서가기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사건 이후로는 그때의 일을 교훈삼아 조심조심 속도조절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본성이 쉽게 바뀌지 않아 요즘도 자주 그렇게 되곤 한다.

조직의 장은 결재하는 게 맛이고, 지휘통솔 하는 게 재미다. 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모든 걸 검토 받고, 승인 받는 게 퍽이나 답답하고 재미없는 노릇이다. 거의 모든 걸 실무자 전결로 처리하게 했다. 사실 작은 조직에서 잔잔한 일을 가지고 서로 권한 다툼을 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1~2년의 조직 적응과정을 거치고는 외부 공연 행사의 경우 섭외, 견적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하도록 했다. 심지어 나는 행사장에도 가지 않는다. 꼭 의사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상호 체크를 하면 실수가 줄어들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실수하면 고치면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 사실 내가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잘 할 자신이 없다. 아니, 더 못할 게 뻔하다. 업무의 완결성을 혼자 느낄 수 있도록 해서 기획부터 행사 완료까지 오롯한 성취감을 주는 게 창의성 측면에서나 동기 유발 측면에서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업무가 분업화 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기계적이 되고, 소모되는가. 일의 전체를 모두 꿰뚫어서 해야 일이 노동이 되지 않는다. 일이 놀이가 되는 방법은 업무에서 일일이 간섭받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창의적 조직일수록 자율권을 주는 게 맞다. 학당의 40여 명의 리더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모임 기획이나 운영은 대략의 가이드라인만 주고, 운영의 묘는 진행하는 사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서로 겹치거나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전체적인 조율은 필요하다.

독신에 2세가 없어서 그렇겠지만, 나이가 벌써 50대를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처럼 살고 싶은 얼척없는 피터팬이다. 아주 철이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인간의 삶을 낙타와 사자, 그리고 아이의 단계로 나눴는데, 아이의 자유로움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복종과 믿음의 낙타 단계를 넘고, 독립과 불복종의 사자 단계를 거쳐 순진무구한 아이의 상태다. 유충이 애벌레가 되고, 나비로 탄생하는 전환인 셈이다.

모름지기 학당에 오는 사람들은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고정관념과 편견, 아집을 깨뜨리고, 과거의 자신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자기혁신을 위해 공부할 것이다. 낙타의 단계를 지나, 사자의 단계에 만족하지 않고, 아이의 단계로 나아가는 일 말이다. 과거의 관습과, 현재의 지식 단계를 넘어서 미래의 지혜 단계에 안착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다. 말하자면 단계적이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번 학당에 발을 들여놓으면, 자동적으로 변태의 과정을 통해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미션이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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