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감을 키우는 예술감성 교육

최초입력 2022.03.03 08:55:04
최종수정 2022.03.03 09:40:06

출처 : 출판사 도서 표지



INFJ다. 이 성향의 특징 중 또 하나는 감정이입을 잘한다는 점이다. 식당에 가면 식당 업주의 마음이 된다. ‘손님이 이렇게 적어서 속이 타들어가겠구나. 이렇게 해서 운영비는 충당할 수 있으려나’ 그런 걱정부터 한다. 그러다 맛집을 발견하면, ‘이 가게를 나라도 자주 먹으러 와야겠다’는 각오를 하기도 한다.
그래야 계속 찾아와서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만 찾아와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블로그에라도 홍보를 해준다.​

어쩌다 보니, '즐거운예감'이라는 이름을 걸고 교육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게 되었다. 벌써 전국의 수많은 가맹점 사업주들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되고 있다. 대략 39개의 지역별 지사장은 물론이고, 학원이나 교습소, 공부방과 홈스쿨(방문교사)의 사업자까지 그들이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심 중이다. 큰 자본이 들어가는 TV 광고는 우리같은 스타트업이 할 수도 없거니와 투자 대비 효과도 의심스럽다.​ <보랏빛 소가 온다>의 세스 고딘이 말한 것처럼 '깜짝 놀랄 만하고, 주목할 만한(remarkable)' 상품(서비스)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상품과 차별화된 서비스만이 그들의 생업을 책임질 수 있다. 예술교육 프랜차이즈라고 알기 쉽게 이름붙였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은 예술을 도구로 사용하는 상상력과 창의력 교육이다. 거기다 토론과 글쓰기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프로그램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전 세계인이 열광한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과 서사만으로 창조된 작품이 아니다. '예감'의 프로그램을 우리는 '세계관 교육'이라고 말한다. 알기 쉽게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지 사실은 '세계감 교육'이다. 이문재 시인은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경하는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고 세계감(世界感)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觀點)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세계감과 세계감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새로운 세계관이 생겨날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놀랍도록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모아놓은 조금은 낯선 낯익은 이야기가, 오래된 기도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았으면 한다."​

여기서 '존경하는 친구'는 문학평론가 고영직 선생을 말한다. 고영직 선생은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살림터, 2020)에서 ‘세계감(世界感)을 위한 예술교육’을 주창했다. 인공지능 사회에서 인간이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창조하기. 그래서, 아이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상상력과 창의력 교육이다.

어릴 때부터 예술을 접하도록 피아노학원에 보내고, 미술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창작자로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양한 감각을 키우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감상하는 법조차 제대로 익히게 하지 못하고, 그저 하기 싫은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다. 뛰어난 작가도 좋지만, 좋은 독자가 더 중요하듯이 유능한 창작자로서의 훈련보다 탁월한 감상자로서의 훈련이 더 필요하기도 하다.​

오감으로 감각하게 하는 게 예술이다. 그림으로 음악으로 무용으로 시각으로, 청각으로, 공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성의 시대는 가고, 감성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 않는가. 정보의 시대가 가고, 스토리의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감각할 수 있어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한다. 그건 말과 글로 가능하다.​

서정과 서사도 다양한 변주를 통해 직조되어야 한다. 서정만으로는 스토리가 부족하고, 서사만으로도 감성이 부족해서다. 학당이 <예술감성 글쓰기>에 이어 <예술토론 글쓰기> 모임을 하고, <예술 에세이> 모임을 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예술은 치유의 과정이고, 감탄과 감동의 과정이다. 감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자신이 충분히 치유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치유시킬 수는 없다. 자신이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는데, 자식을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모자공학,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부모와 아이들이 세대간 통합을 해야 하는 이유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성적이 아니라 성취가 더 필요하다.​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는 있다. 성공의 잣대를 사회적 성취에 한정해서는 아이도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다.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감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구든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의 감정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배려와 협력, 앞으로의 시대는 공감능력과 협업능력이 좌우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심미안(審美眼)을 키울 수 있는 예술교육이 더 필요하다. 보는 눈, 즉 안목을 키우는 일이 공부와 학습의 기본이고, 문화교양의 기초다. 메마른 지식(知識, knowledge / know-how)보다는 따뜻한 지혜(智慧/知慧, wisdom)가 필요하고, 차가운 이성(理性)보다는 촉촉한 감성(感性, sensitivity / sensibility)이 필요하다. 감각을 키우는 일이 예술교육이다. 우선 그림(시각)부터 시작한다. 이후에 음악(청각), 건축(공간감각), 사진(시각)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그렇다면, ‘예술감성 교육’은 무엇인가. 예술(藝術)은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특별한 재료와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나 그 작품을 말한다. 우리가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외모, 맛 따위가 매우 높은 수준에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우리는 ‘예술이다’라는 감탄사를 내지르기도 한다.​

미를 추구하는 게 예술이라고 한다면, 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예술가(藝術家)다. 미(美), 아름다움은 누구나 추구한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반하고, 아름다운 동물이나 사물을 봐도 그렇다. 미는 세련미, 투박미, 순수미, 관능미 등 다양하게 있겠지만, 가장 중심은 균형미라 생각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상태. 의식으로 보면, 객관화 능력이다. 균형 잡힌 몸매, 균형 잡힌 얼굴, 균형 잡힌 시각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추하지 않고 편협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직업 예술가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다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향유하는 취향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즐거운예감’에서 하려고 하는 예술감성 교육이다. ‘예술 향유자’라는 말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는 사람, ‘미적 인간’이야말로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출처 : 드라마 <오징어게임> 스틸 이미지



신기수 객원우버칼럼니스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