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와 더듬이

최초입력 2022.03.14 09:33:01
최종수정 2022.03.14 09:54:56

사진 : 픽사베이



​더듬이가 발달한 사람이 있다. 촉각(觸角)이라고도 한다.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으로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각종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민감한 촉수(觸手)처럼 촉이 좋은 사람을 말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촉(觸)을 주관과 객관의 접촉 감각으로, 근(根)과 대상과 식(識)이 서로 접촉하여 생기는 정신 작용이라고 말한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 있다.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눈치 없는 사람과 있으면 아주 답답하다. '라떼는 세대'가 꼰대인 이유는 이런 눈치와 더듬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경직된 조직에 몸담아 더듬이가 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명하복의 위계조직에서 더듬이를 예민하고, 예리하게 발달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겨운 장광설과 반복되는 무용담과 자기 자랑이 넘쳐난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에 신경써야 한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뒷방 늙은이와 나이든 현자는 이런 눈치와 더듬이 여부로 판가름나지 않을까. 지식과 경험이 많다고 지혜가 많은 게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인간이다. 그런데, 지식과 경험이 많다고 지혜로울 거라고 착각한다.

자주 객관과 주관을 오간다. 이성과 감성을 오간다. 이상과 현실을 오간다. 열정과 냉정을 오간다. 글도 그렇지만, 말도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몰입을 해야 하지만, 과잉은 곤란하다. 선수로 뛰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감독과 구단주의 자세도 필요하다. 연기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감독과 제작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1인 미디어의 시대가 바로 그런 능력을 요한다. 저자의 입장도 되어야 하고, 편집자와 기획자의 입장도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편집자와 기획자의 입장도 되어야 하지만, 저자의 입장도 되어야 한다. 타산지석이다. 입장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직원과 사장의 입장도 바뀌어봐야 한다.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일도 당연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았던 상황도 이해가 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자신을 객관화시키기 위해서다. 독자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저자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은 자신이 읽기를 위해 쓰는 메모가 아니면, 모두 타인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한 글이다. 그렇다면, 그 글은 독자를 향해야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글에 매몰돼 있다. 듣고 싶어하는지 고려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말도 글도 스스로에 빠져 장광설이 넘쳐난다.

​객관 위의 주관, 이성 위의 감성, 이상 위의 현실, 열정 위의 냉정이 필요하다. 반대로, 주관 위의 객관, 감성 위의 이성, 현실 위의 이상, 냉정 위의 열정도 필요하다. 주관과 객관 사이, 감성과 이성 사이, 현실과 이상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줄타기가 필요하다. 나의 더듬이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 다시금 감각해본다.

신기수 객원우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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