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 이유

최초입력 2022.07.15 09:47:11
최종수정 2022.07.18 09:29:35

출처 : 롤러코스터 출판사 제공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아직 건너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말은

아직 내가 하지 못한 말이다.


- 나짐 히크메트, <파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의 시; 1945년 9월 24일>

교과서 없는 국어 수업. 그게 가능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마다 배우는 교과서가 다를 수 있다는 것때문에 놀랐다.
중학교 다닐 때는 농업을 배웠는데, 도시에서는 공업이나 상업을 배운다고 했다. 그런데, 공업도 학교마다 출판사가 달랐다. 그때만 해도 교과서는 모두가 똑같아야 시험볼 때 공평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정답이 있는 줄 알았다.

대학에 다니면서 세상에는 정답과 오답으로 명백히 구분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명백한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는 걸 체험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흑과 백이 분명하지 않았다. 회색지대도 있고, 다른 색깔도 많았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대채로움이 당연하고, 더 빛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아갔다. 일원화 사회와 다원화 사회가 있고, 일신교와 다신교가 있다는 걸 배우면서 세상의 진리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

중학교 시절은 생각의 혼돈을 겪는 시기다. 고등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그 시기에 오로지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애처롭다.

"우리 학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규수업이 있고, 4시 10분부터 5시 40분까지는 방과후 수업, 5시 40분부터 6시 30분까지 저녁식사 시간이다. 그리고 6시 30분부터 밤 11시 30분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12시에 취침을 한다. 이것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일과다. 금요일에는 종례와 동시에 학급의 절반 이상이 기숙사 짐을 넣은 캐리어를 끌고 대치동으로 학원 수업을 들으러 간다. (중략) 월요일 조회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면 모두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월요일 1교시마다 눈 밑이 시커먼 아이들을 깨우면서도 이게 과연 잘하는 일인지 자신이 없었다." <우리들의 문학시간>(하고운, 롤러코스터)은 입시와 수능의 부담이 거의 없는 과학고의 특수한 상황에서 임하는 국어수업을 다룬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꼭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문학의 가치는 이과든 문과든, 과학든 외국어고든, 인문계든 실업계든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처음에는 독립출판으로 출간됐지만, 교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큰 인기를 모으자 결국 정식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국어교사로서 과학고로 전근을 오게 된 저자는 교과서 없는 국어수업을 목표로 정하고, 자유롭고 파격적인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시와 소설을 읽고, 과학책과 희곡을 읽는다. 영화를 보고, 시낭송을 하고,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고, 서평을 쓴다. 입시에 목매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수업일까 싶지만, 과학과 수학만으로 점철된 수업에 지쳐 있는 학생들에게 무용해 보이는 문학이 오히려 한 줄기 단비와 같았다.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야말로 문학의 가치와 효용이 아니던가.

다양한 수업 활동을 통해 교사와 학생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하며, 서로를 이어주는 공감의 깊이를 더해간다.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첫해부터 차례로 2, 3학년을 담임을 맡으며 진행한 과학고의 특별했던 수업 기록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는 흥미로운 수업 모음이다. 또한, 교감하고 질문하며 한뼘씩 자라가는 학생과 교사의 생생한 성장담이기도 하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으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고자 합니다."

매년 2학기 교사,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원능력평가를 실시하는데, 이 책의 저자 하고은 교사가 자신의 수업 소개글에 쓴 내용이다. 그에게 수업 목표의 달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주변을 둘러보길 바랐고, 한 번 더 생각하길 바랐고, 세상과 자기를 바로 보길 바랐다. 함께 읽고, 생각하고, 변화해야만 했다.

과학고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국업 수업에서 저자가 알려주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나를 키우는 시간'을 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뭘 좋아했었지? 내가 기쁨을 느끼는 건 언제지? 난 무얼 하고 싶지?'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작은 질문들을 통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삶에 작은 균열을 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이라고 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기쁨을 느낀 건 언제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우리들의 문학시간>이 던지는 작은 질문이다. 하지만 결코 작은 파문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즐거운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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