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년’ 허연의 다정에 대하여

최초입력 2022.07.18 10:11:28
최종수정 2022.07.18 11:20:44

출처 : 출판사 책 이미지



시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시를 오롯이 느끼기에 내 마음은 바빴다. 인연이 닿아 한 시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까칠하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가 왜 까칠한 지 알고 싶었다.
시집이었으면 지나치거나 제대로 감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산문집이라 문장 속에서 시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 시같은 산문이어서 알 듯 모를 듯 책장 사이를 헤매기도 했지만. 허연 시인의 산문집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 이야기다.

"산 색깔이 바뀌는 건 기적이다. 어제 봤던 바로 그 산이었는데, 오늘 색깔이 바뀌어 있는 현실은 기적이다. 생명의 기운이 영원히 사라진 것 같았던 마른 가지에 초록의 기운이 드러날 때 나는 기적을 느낀다. 부활은 그런 것이다. 나무들은 스스로 서 있는 자리를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는 구원이나 혁명을 애걸복걸하지 않는다. 자리를 바꿀 수 없으므로 입장도 진영도 바꾸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스스로를 바꾼다. 부활을 하는 것이다. 서 있는 자리를 바꿀 수 없으므로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기적을 행한다. 봄산은 기적이다." (133쪽)

'봄산'이라는 제목의 산문(시)다. 작년 연말에 오래된 신도시 일산서구 덕이동에서 오래된 구도시 성북구 종암동으로 이사했다. 집 뒤 채석장이었던 개운산(開運山)은 썰렁했다. 그런데, 4월이 되자 시인의 말처럼 부활했다. 개나리가 피고,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해지고, 담쟁이 덤불이 바위와 비탈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자연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내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계획도시 강남이나, 주변에 산이 없는 거주지를 힘들어하는 건 나무의 푸르름과 생명력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일산은 고봉산(高峰山, 208m)이 있다지만, 정발산(鼎鉢山) 황룡산(黃龍山, 134m) 견달산(見達山, 132m) 등 낮은 구릉성 산지 뿐이다.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청계산처럼 도시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우뚝 솟아 있는 산은 없다. 20~30층에 달하는 콘크리트 아파트 산 말고는. 개운산은 안암동과 종암동의 경계를 이루면서 높이는 약 134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산 바로 옆에 웅크리고 있는 우리 집을 비롯한 개운산마을을 감싸고 있다. 기적을 가까이 두고 사는 셈이다.

시 쓰는 일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허연 시인의 첫 자전적 에세이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민음사). 10년 넘게 신문 칼럼, 잡지, 소셜 네트워크 등 여러 매체들에 쓴 아포리즘과 길고 짧은 산문들을 선별해 수록했다. 그의 삶이 흘러온 내력과 생각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절제미와 압축미를 좋아하는 시인에게는 이렇게 풀어헤쳐 마음을 내보이는 산문집이 민망한 일인지 몰라도 시인의 감성과 내밀한 생각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아주 반가울 책이다.

나는 불꽃같은 삶을 원했다. 수수해 보여도 마음속에는 한 불덩이같은 열정때문인 듯하다. 그러니 사람들과 자주 불화하고, 어긋났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결례를 하고 마음을 다치게 했다. 한때는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던 수줍은 아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숙일 줄 모르는 꼿꼿한 강성’의 대표가 되었다.

종암동으로 이사 오고, 현관 앞 베란다에 세 개의 화분을 들여놓았다. 만데빌라와 임파첸스, 고무나무다. 그런데, 임파첸스는 한 나무가 이렇게 많은 꽃을 피워내는 게 가능한가 싶을 만큼 두세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꽃을 피워내고 있다. 작년에 가드닝 전시회에 갔다가 <식물의 재발견>이라는 모임을 기획하면서 나의 삶도 달라졌다. 어린 시절 고향이 궁벽한 산촌이라 풀과 꽃, 나무는 지천으로 널려서 나무의 고마움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도시로 나오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시인의 말처럼 봄산이 기적이라는 것도, 내가 키우는 나무처럼 날마다 새롭게 부활하며 살고 싶다는 것도 초록 앞에서 깨닫게 된다.

"갇혀 있는 사람은 편지를 많이 쓴다. 그들은 그리움이라는 무기를 들고 생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태도로 세상과 접촉한다. 그것이 갇힌 자들의 편지쓰기다. 탄식과 슬픔이 담장을 넘어가지만 밖에서는 천천히 아이들이 자라날 뿐이다." (118쪽)

생의 어려움을 겪던 내게 숨구멍은 매일 새벽의 블로그 글쓰기였다. 지난 1년 동안 참 무던히도 글을 써냈다. 처음에는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경당)라는 책에서 제시한 실천 도구인 '모닝 페이지’를 통해서였다. 모닝 페이지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것이나 자유롭게 써나가는 것으로 이를 통해 내면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모닝 페이지의 철칙이 앞뒤 생각하지 않고, 속마음을 자기 검열 없이 술술 풀어내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치유의 효과를 경험한다. 문제는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비공개 일기장에 써야 할 내용들이 많은데,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교신해야 그 효과가 더 커진다. 글쓰기가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니까. 공감을 받거나 지나친 자기 주장이거나.

그렇다보니 글이라는 게 자신을 깨우고 발견하는 치유제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 그걸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쓴 이전의 몇몇 글들은 '왜 이렇게 과도하게 날이 서 있었을까', '한 숨도 쉬지 않고 내달린 글을 썼을 때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성찰하게 된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건 갇힌 자의 절박한 편지이자 어쩌면 또 다른 '고백'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영혼이 울부짖는.

"고백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은 행위다. 상대가 받아들여 주면 무사히 다리를 건널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폭해야 한다. 고백은 그래서 숭고하고 그래서 치명이다. 그대, 고백이 무서워 사랑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13쪽)

허연 시인은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가 출간되었을 때, 문학평론가 故 황병하로부터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그 어떤 유(類)도 아니며, 자기만의 공화국"을 가지고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정공법으로 '무의미의 의미'라는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미학을 창출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인 김경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불온한 청춘들은 이 시집을 필사하며 '돌림병'을 앓았다고 한다. 시집에 얽힌 이야기 또한 한 편의 시로 읽히고, 일단의 젊은이들이 '빨간 책'을 읽었다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몰래 숨어들어 이 '검은 책'을 읽었다고, ‘문청’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제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나쁜 소년' 허연 시인은 달라졌다. 세상에 냉소하기도 하고, 삶에 허무하기도 했던 그의 시선에 이제 온기가 돈다. 세월과 사람이 그리 만들었을까. 지나친 동일시인지 모른다. 나의 별명도 '사회화가 덜된' 사람이었다. 속마음과 다르게 '선한 의도에도 왜 그렇게 욕을 먹는지 안타깝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길고도 긴 터널을 벗어나 맞이한 생의 성취는 작은 성공에 들떠 공명심으로 바뀌었는 지도 모른다. 보상 심리도 작용했다. 한동안의 침잠은 그 시간만큼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용했다. 참여와 공유, 협업의 정신은 어느새 속도전에 빨려들어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인과 예술가는 산소를 체크하기 위해 두는 잠수함의 토끼처럼 사회의 공기(公器)라 말한다. 우리 사회가 과연 숨쉴 만한지 오염의 정도를 체크하는 역할을 한다. 예민한 그들이 가장 먼저 비상벨을 울리는 사람들이다. 나도 시인의 문장들을 읽으며 내 시시한 기분을 위로받고 그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시인의 ‘내게 일어난 기적'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마음만 바꿔먹으면 우리의 날들은 매일이 기적이다.

"우연히 작은 텃밭을 일구게 됐다. 그날부터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됐다. 토마토 열매가, 완두콩 새순이, 막 줄기를 감기 시작한 오이가, 마른땅을 굳세게 뚫고 싹을 낸 옥수수가, 거짓말처럼 땅속에 알을 맺기 시작한 감자가 나를 필요로 하는 날들이 시작됐다. (…) 토마토도, 옥수수도, 완두콩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가르치듯 그날그날의 아픔과 환희를 주었다. 어떤 날은 부러진 줄기와 벌레 먹은 잎으로, 어떤 날은 이제 막 수줍게 얼굴을 내민 작고 분부신 열매로 나를 가르쳤다. (…) 이 여름날 내게 일어난 기적이었다." (105쪽)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숭례문학당ㅣ즐거운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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