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최초입력 2022.07.26 11:13:54
최종수정 2022.07.26 11:39:27


진퇴양난 시절이 있었다. 작은 회사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다. 대표가 해야 할 일이 버겁고, 내가 당장 잘할 수 있는 일도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대표의 자리라는 것이 하려고 하면 끝이 없지만, 안해도 크게 표나지 않아 시간이 남아돌았다. 실무는 실무자가 잘 해내고 있었고,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2017년에 내가 그 상황이었다.
'샌드위치 위기론'이란 게 있었다. 한국의 경제상황이 선진국처럼 주도하지도 못하고, 중국 인도 등의 개발도상국들로부터는 따라잡히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걸 일컬었다. 말 그대로 '오동나무에 걸린'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대표는 잔잔한 일을 위임하고 큰 일을 해야 하는데, 당시의 나는 찾지 못했다. 아니, 큰 기획이나 대형 영업을 잘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표가 실무를 직접 하면서 바쁘고, 실무자는 팽팽 노는 것도 문제다. 자신이 불안하지 않기 위해 아랫 사람의 일을 빼앗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 신대표가 아니라 신대리가 되는 일이다. 자신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실무자가 5시간 걸릴 일을 나는 5분이면 되는 걸 시전하기도 한다. 일이라는 게 정보나 경험, 그리고 숙련도가 가장 중요하므로.

그런데, 실무자의 역량을 키우지 않고, 대표의 실력만 드높아서 무엇을 할 건가? 한 번 대표의 실력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기업은 대표의 1인 역할극이 아니다. 시스템, 나를 대체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 시간동안 많이 힘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이렇게 없나? 좌절하고 회의했다. 지금 와서 보니, 실무자의 일을 빼앗지 않고도 내가 할 일이 너무 많다. 온갖 기획이 넘쳐난다.

하고 싶은 사업군도 너무 많아졌다. 테마여행, 공동체 주택, 출판 기획도 그렇지만, 새로운 강좌와 모임을 기획할 게 널려 있다. 책만 보면, 그 책을 활용한 모임 기획이 떠오른다.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좋고, 그 저자를 초청해서 하는 강연회나 행사도 그렇다. 꽂힌 책을 칼럼으로 소개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사람이 칼럼을 보고 좋아할 것만 생각해도 기분이 행복해진다.

만약 그 시절에 내가 실무자에게 일을 위임하고 나눠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선 내가 불안하지 않으려고 하던 일, 잘하는 일만 하고, 대표로서 맡겨진 새로운 일을 개척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학당도,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권한과 업무를 위임하지 않았다면, 자발적 소외를 겪지 않았겠지만, 지금처럼 실무자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체질적으로 일을 혼자 떠안고 있는 성향이 아니기도 하다. 일이 오면, 바로 패스하길 좋아한다. 당사자에게 회신하거나, 관련자에게 공유하거나.

50여 명의 학당 리더들이 나의 기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주고 있다. 총론과 각론을 나눠서 맡고 있다 생각한다. 숭학당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그간 설계해왔다. 이 학당이라는 세계에는 나름의 규칙도 생겼다. 참여와 공유, 협력의 가치다. 도구는 주로 토론과 글쓰기다. 매개체는 그간에 책이 중심 역할을 했고, 이제 예술이 그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독서공동체가 공부공동체, 생활공동체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 우석훈의 <88만원 세대>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20대 청년 논객들에게 사회적인 발언권을 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프리랜서>(워크룸프레스)을 쓴 노정태 저자도 때이른 20대에 신문 칼럼니스트가 되는 행운을 누린 사람이다. <불량 정치>, <논객 시대>를 썼고, <아웃라이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등의 책을 번역했다.

그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한다면, 더구나 첫 사회생활 직업이라면 가급적 안정된 직장을 다닐 것을 권한다. 하지만, 경제적 풍요로움보다는 조직의 시간과 규칙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의 삶도 괜찮다 생각한다. 자신의 프리랜서 경험을 들려주면서. 하지만 문화예술 업계는 '즐기는 자'들이 수두룩하니까 단단히 각오하라고 조언한다.

“만약 작업이 좋고 마감을 제때 지킨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어지간히 불쾌한 존재여도 참아줄 것이다. 당신의 작업도 좋아하고 당신 자체도 좋아한다면 작업 속도가 느려도 용서받을 수 있다. 만약 제때 결과물을 내놓고 함께 어울릴 때 즐거운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처럼 결과물이 좋지 못해도 괜찮다.”

닐 게이먼이 2012년 런던 예술대학교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부제 '사교성, 실력, 마감' 중에서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답이 나온다. 마감이 실력을 쌓고, 실력이 사교성을 키워준다. 사교성과 실력은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하다 보면 쌓을 수 있지만,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계속 자신의 실력과 사교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조직에 있건 프리랜서건 신의를 지키는 일은 가장 중요하다. 그 무엇보다 잘 해낼 수 있는 스스로를 믿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숭례문학당ㅣ즐거운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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